문득 떠오른 기억에 새삼 깨달을 때가 있다. 스쳐간 수많은 시간 중 결국 이 순간이 남아있구나, 하고. 나는 오늘 서울로 가는 버스의 맨 뒷좌석에 앉아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이 어떤 형식으로든 마음속에 남겨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예언처럼 찾아오는 이런 순간에는 더 면밀히 지금을 남기려 노력한다. 이틀 간의 여행을 마치고 함께 버스에 탔고, 우리가 버스에 타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워진 만큼 해가 지는 속도는 순식간이었고, 밤은 길었다. 차에 오른 것은 오후 5시쯤이었는데 고속도로를 타기도 전에 바깥은 깜깜해졌다. 빗방울은 버스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알알이 흩어져 유리창에는 사선이 가득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생각했다. 날이 조금만, 조금만 더 추워서 지금 내리는 것이 비가 아니라 눈이라면 좋을 텐데. 그랬다면 참 꿈같을 텐데.
내 방 침대에서는 잠이 무척 잘 온다. 깊이 잤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꿈을 꾼 것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꿈에서 오빠는 새로운 올리브나무를 데려왔다. 가지가 근사하게 정리된 그런 멋진 나무를 보여주곤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피읖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생각하는데 자꾸만 마음이 꿀렁거렸다. "오빠, 집에 있는 그 올리브 나무는 버린 거야? 못생겨서 버리는 거야?" 라며 울먹였다. 눈물을 보이기 싫었는데 눈가에 자꾸 물이 고였다. 찝찝한 기상이었다. 설익은 잠을 보상받고 싶어 낮잠에 들었다. 낮잠이라고 해야 하나, 5시간을 내리 자버렸는데. 침대가 너무 좋아도 탈이다. 뭐든 '너무'하면 문제가 생긴다. 여튼 짧고 긴 잠들이 몸에 잘 쌓인 덕분인지 버스만 타면 잠드는 나답지 않게 눈에 총기가 넘쳤다. 맨 뒷좌석은 바퀴의 움직임이 그대로 엉덩이에 느껴져서 불편하지만, 버스의 전체를 볼 수 있어서 좋다. 인간은 왜 높은 곳을 좋아할까, 하는 질문과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던 대답이 생각났다. 나는 하늘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아실현보다는 안전에 대한 욕구가 더 하위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싶었다. 매슬로우가 죽기 전에 자기가 그린 삼각형을 거꾸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던데. 잠깐 천국을 봤나 보다. 역삼각형의 욕구 위계는 천국에서나 어울린다. 현실은 아니다. 불가능이다.
서울행 고속버스. 그 차에 오빠와 함께 앉아있는 지금을 기억하고 싶었다. 어떤 식으로든 기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순간을 남기고자 카메라를 꺼내는 것처럼 나는 지금을 기억하려 눈을 감았다. 버스 창가에 얇고 굵은 선을 그렸다. 노랗고 빨간 불빛을 담은 물방울은 쉼 없이 유리 위를 굴렀다. 빼곡한 사람들을 그렸다. 두 자리는 비어있었다. 분명 남아있는 좌석이 없었는데. 그들은 무슨 이유로 이 차를 놓쳤을까. 옆에 앉은 오빠도 잊지 않고 그렸다. 더 자세히. 그건 더 자세히 그려두고 싶어서 손을 뻗어 오빠를 만져봤다. 한참을 뛰어오느라 조금은 젖어있는 머리와 트레비앙이 적힌 흰 티셔츠. 크고 두터운 손과 구불한 산길이 생각나는 귓바퀴. 코는 어떻게 생겼더라.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눈을 떴더니 오빠는 허리가 없는 사람처럼 의자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안경다리에 눈을 가려서 나는 오빠가 잠든 줄 알았다. 인기척을 느낀 오빠가 나를 쳐다보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잔뜩 골이 난 프랑스 남자아이 같았다. 그게 웃겨서 나는 깔깔댔고 오빠는 영문을 몰라서 왜 웃냐고 자꾸 물었다. 나는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곳곳에 숨겨놓은 사랑을 오빠가 발견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건 혼자만 알고 있어도 좋다. 오빠가 몰라도 상관없다. 나는 계속 혼자만 아는 이유로 키득거렸고 오빠도 그런 나를 보면서 웃었다. 이유도 모르고 웃었다.
티브이에서는 런닝맨이 나오고 있었다. 둘 다 예능에는 별 흥미가 없어서 노래를 듣기로 했다. 에어팟을 나눠 끼고 노래를 틀었다. 서로에게 가까운 쪽의 귀는 서로를 위해 남겨두었다. 이런 디테일은 우리 사이의 특별함 중 하나다. 그런 것들로 나는 자주 즐거워한다. 빛과 소금, 술탄, 이소라 등 많은 목소리가 지나갔다. 오빠의 핸드폰은 갤럭시, 이어폰은 에어팟이다. 출신이 다른 이 아이들은 종종 티격태격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틱- 하고 블루투스에 오류가 생겨버린다. 오늘도 그랬다. 손가락을 움직이고 발목을 까딱거리며 열심히 듣고 있는데 노래가 끊겨버렸다. 웃겼다. 한참 신나게 풍선을 불다가 주둥이를 놓쳐버린 것 같았다. 피슉. 바람이 빠졌다. 짜친다 싶었다. 아니 그런 쓸쓸한 클리셰 말고. 배꼽 빠지는 비급 영화에 나올 법한 그런 거.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의 마지막 장면 같은 거 말이다. 위풍당당 행진곡이 나오면서 모든 악당들의 머리가 오색빛깔로 터져버리는 그런 짜침. 코끝이 시큰할 만큼 추운 공기에 이따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것처럼 그런 순간 유독 우리 사랑이 빤짝, 빛이 난다. 뭔가 인간적이다. 실감이 난다. 그런 결핍된 순간이 알려준다. 꿈이 아니야, 이거 진짜야! 하고. 11월, 반팔을 입고 800미터를 뛰어온 오빠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반짝 말고, 빤짝.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어느 날, 조용히 불을 밝힐 초 한 자루를 이렇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