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굴려 글자를 쓰려하니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 한다. 그래서 가슴을 굴린다. 눈 몇 개를 지우고, 귀 몇 개도 지우고, 지나가던 손가락 몇 개 마저 지우니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아 그래.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비로소 깨닫는다.
C와 나는 수학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미처 냉기가 가시지 않았던 어느 봄, 빈 교실에서 곱셈공식을 열심히 외고 있을 때였다. 밀린 산수문제에 허덕이고 있을 때, 한 남자 아이가 나와 같은 문제집을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꽤 공부를 잘하는 듯 보였던 건 아마 그 친구가 쓰고 있던 안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녕. 하고 말을 걸다가, 툭툭. 건들여도 보다가 나는 그래도 되겠다- 싶은 마음에 시간 나면 내 문제집도 풀어보라 당차게 이야기를 한 듯 하다. 그 독특한 안경 뒤로 자그만한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가 이내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 날 일찍 집에 갈 수 있었다.
C와 나의 사이는 늘 그래왔다. 첫 만남의 도돌이표였다. 옆 동네 살던 C는 나와 겹치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렇게 종종 학원 끝나고 얼굴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생김새를 닮은 이상한 별명을 지어주고, 괜한 안경을 트집잡아 신경을 긁는 장난을 던진 건 항상 내 쪽이었으나, 나도 이유는 있었다. 그 느긋한 미소와 겉늙은 대답. 그것은 늘 묘하게 나를 추동했다. 또래같지 않은 C의 반응이 은근한 나의 승부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래? 너는 대체 언제 화를 내는 거야? 너는 언제 나를 웃긴 별명으로 불러줄거야?’ 하는 심정으로 나는 꾸준히 다홍빛 돌멩이를 그에게 던졌다. 나의 그 돌멩이 덕분에 C와 나 사이에는 늘 단상이 놓여있었고 매번 그 미적지근한 반응과 함께 그는 자진해서 낮은 쪽에 앉았다. 항상 2등을 선택하는 아이. C는 내게 그런 아이였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일.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같이 가는 일. 나의 글을 좋아하는 일. 나의 계획에 함께 하는 일. 나를 보러오는 일과 나를 데려다주는 일. 나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 나의 비밀을 궁금해하지 않는 일. 나를 기다리는 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2등인 C에게 요구하는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조금은 달라진 듯도 했다. 다른 자리가 남아있음에도 나는 당연한 듯 있던 곳에 올라가 C를 내려다보았다. 알았어야했다. 남은 자리에 앉는 그의 기분을. 나는 알았어야 했다.
'우리' 라는 단어는 그렇게 흩어진다.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는 인생을 초콜렛 상자에 비유한 대목이 있다. 맛있는 초콜렛도 있는 반면 맛없는 초콜렛도 있는 법이라는. 인생에는 정해진 양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는 소리다. 나는 그간 내 상자에 담긴 맛있는 초콜렛을 까먹었고, C의 초콜렛 상자까지 욕심을 냈었다. 차곡차곡. 자신의 초콜렛을 내 상자에 옮겨 담는 소리. 나는 그것이 영원할 줄로만 안 것이다. 결국 그는 제 자리에 앉는다. 한 번도 앉지 않았던 그의 자리에 앉게 된다. 비어가는 그의 초콜렛 상자에 자신의 것을 내주는 이의 상자를 목격한 이후로. 함께 보낸 수 년의 시간이 바람이 되었을 때 우리라는 단어는 날아간다. 너무도 무력한 모습으로 부서진다.
그리고 나는 익숙하지 않은 자리에 앉아 남겨진 것들을 줍는다. 화가 나서 줍던 조각을 다시 내팽개치고, 버려진 그 모습이 안타까워 그것을 다시 주워 부둥켜 안기를 반복한다. 시절은 아직 내 마음에 살아있고 나는 그것이 너무도 괴롭지만 끔찍히도 아끼기에 죽이지도 못한다. 잘 줍고 잘 토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