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해보고 싶은 게 있어

by 승아

나 해보고 싶은 게 있어. 첫 시작은 그곳이었다. 뉴질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 엉겨 붙은 감정들 때문에 그와 나는 여행의 시작부터 삐끗 댔다. 이런 게 아닌데,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것보다 훨씬 활기차고 편안한 마음이었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내가 느꼈던 것처럼 그 또한 마주한 이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아 보임에 틀림없었다. 계획을 짤 때부터 그랬다. 다리를 다친 새처럼 절뚝절뚝.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던 것은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불리한 쪽은 보나 마나 내 쪽일 테니. 이 육지만 뜨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다리를 다쳐도 날 수 있는 새처럼. 새로운 땅에 우리 둘만 뚝 떨어지면 이곳에서 아팠던 것은 모두 잊고 분명 그렇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지독하게 태워먹은 프라이팬을 닦아내는 것처럼 낯선 불편함이 자꾸만 엉겨 붙었다. 차를 타고 달리며 부르던 노래의 마디에도. 시리얼을 먹던 스푼을 내려놓을 때에도. 광활한 초지와 모든 것을 압도하는 파도 앞에서도. 행복은 스타카토처럼 뚝 뚝 잘라진 채로 찾아왔다. 충만하지 않았다. 덜그럭. 트렁크에 실은 두 캐리어가 부딪히는 소리는 꼭 우리 둘 사이를 겨냥한 것만 같았다. 중요한 대화가 무엇인지, 차 안에 있던 두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쉽게 꺼내지 않았다. 그들이 지내온 세월처럼, 이 또한 시간이 무마해줄 것이라 회피하면서. 대화는 겉돌고 맥은 자꾸 빠지고. 달갑지 않은 이틀 밤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래도 짙은 그 자국을 새하얗게 지웠던 몇 가지의 경험이 있었는데, 첫째로는 빌린 숙소의 마당에 누워 별을 보던 순간. 둘째로는 황량한 사막과 함께 있던 90마일 비치에서의 몸싸움. 셋째로는 구멍 난 창 사이로 들어오던 햇살에 눈이 떠졌을 때.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던 그는 셋째 날 저녁, 애써 피하던 이야기들을 테이블 위에 잔뜩 올려뒀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말하는 동안 절절매기도 했고, 울컥 뭔가 치솟았던 기억이 있지만 왜인지 그 대화의 내용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귀를 기울이던 앞사람의 표정과 예상과 달랐던 따뜻한 반응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들과 그때의 대화 내용을 그는 기억할 것이라는 어떤 확신 앞에서 나는 지금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나는 꼬여있는 실뭉치를 툭 던져놓았고,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내 몫이었는데 결국 그것 또한 그가 해냈다. 나를 향한 그의 마음은 정말이지 천하무적이구나, 하는 고마움과 함께 꽉 막혀있던 흥겨움이 넘칠 듯이 흘러나왔다. 그 날 그 테라스 앞에는 집주인이 키우던 소와 말들이 있었고, 까만 어둠 사이에 숨어 종종 울음을 냈다. 그것이 너무도 생소했고 그래서 너무도 행복했다. 내가 저지르고 온 한국에서의 모든 일들이 이 곳과는 별개라는 생각이 나를 해방시켰다.


나 해보고 싶은 게 있어. 나답지 않다고 여긴 모든 행동을 하고 싶었다. 그게 자유고 나는 그것을 이곳에서 반드시 만나야만 한다고 여겼다. 담배를 피워보자. 갑작스러운 제의에 그는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그래 해보자.


목축을 주업으로 삼는 작은 동네라 늦은 시간까지 열려 있는 마켓이 없었고, 우리는 빌린 차를 타고 시내로 나섰다. 처음 사보는 담배에 나는 그의 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꼭 마약이라도 사러 온 사람처럼 멋쩍게 담배를 사고 싶다고 점원에게 요청했다. 어렵사리 손에 쥐게 된 그 담배의 이름은, 뭐였더라, 홀리데이였나. 어려운 임무라도 마친 듯 그것을 들고 한참 웃었지. 다시 돌아온 숙소에 앉아 아주 조심스럽게 담배 하나를 손에 들었다. 이렇게 불을 피워서 연기를 마시는 거야. 그는 이런 것을 나에게 알려 줄 날이 올 줄 몰랐다며 설명하는 사이사이 자주 웃었다. 불을 피울 때에는 숨을 들이마셔, 그래야 불이 붙지. 세네 번의 시도 만에 연기를 어떻게 삼키는지 알아냈고, 목이 따가워 물 두 병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입에 담고 그냥 뱉어내는 연기와 삼켜낸 후에 뱉어내는 연기가 어떻게 다른지, 담배연기로 만드는 도넛은 어떻게 하는 건지, 담배와 얽힌 이야기 몇 개를 그에게서 들으며 그 밤을 지새웠다.


행복 그 언저리가 아닌, 행복 그 정확한 중심에 서있다는 확신이 너무도 밝아서 별빛 같은 것은 눈에 차지도 않았던 그 밤. 그런 지독한 밤을 어떻게 잊겠는가. 너를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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