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의 작은 사건에 집착하곤 한다. 그런 류의 날 선 집착은 종종 나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망가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또한 소소한 사건들이기 때문에 나는 발에 차이는 그런 기억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병원 도서관에서 익숙한 로션 향과 함께 <신의 물방울>을 읽던 일, 엄마와 함께 만두를 빚던 일, 아빠와 함께 병풍산 아래에서 싫어하던 잔치국수를 먹던 일, 술에 취한 동생이 내 방에 들어와 신세한탄을 하던 일, 베니스 선착장에서 소중한 이와 화해를 하며 눈물짓던 일, 비 오는 날 계획했던 단풍놀이를 강행했던 일, 크리스마스날 아이슬란드의 어느 길에서 눈더미에 차가 파묻혔던 일, 밤새워 여수의 광장에 모여 맥주를 마시던 일, 늦은 밤 경복궁 뒷길에서 믿음직한 조명 아래 예쁜 척하던 일까지. 말하자면 끝도 없을 이런 기억들이 내 안에 흐르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잊기 싫은 기억을 만나면 핸드폰을 든다. 가벼운 순간들은 사진을 찍고 그것보다 더 가벼운 순간들은 영상으로 남기고, 너무 가벼워 금세 날아가버릴 순간들 앞에서는 녹음기를 켠다. 사소한 순간을 오랜 시간 다뤄오며 터득한 나만의 비법이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을 가둬놓은 단어를 외쳤을 때, 단어 밖으로 흩어지는 의미들을 항상 아쉬워했다. 온전하게 전하고 싶은 욕심에 골라낸 수많은 단어들을 붙일수록 전하고 싶은 마음은 숭텅 숭텅 잘라져 나간다. 그래서 나는 형태가 없는 그릇을 꺼낸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매번 가시적으로 담을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중요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 그릇을 꺼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회색빛의 일상에 지쳐 나라는 존재까지도 무채색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저장해둔 소리를 재생한다. 순간을 기억하게 하는 사진과는 달리 순간을 다시 겪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소리를.
지친 날이었다. 해야 할 것이 많은데 하고 싶은 것은 그것과는 또 전혀 달라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일들을 지켜만 보고 있던 날. 어떻게든 해보려고 괜한 계획만 짜는데, 그걸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정확하게 예감하던 때. 나는 또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에 녹음된 순간들을 재생한다. 해리포터 속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그것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나를 인도했다. 조금 거칠던 바람 소리는 이른 봄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낙산공원에 올랐던 날. 이래저래 많았던 혜화동의 추억을 나는 네게 이야기했었고, 나에게는 익숙하고 너에게는 생소한 장소인지라 나는 약간 달떠있었다. 여기는 이게 맛있고, 우리 엄마 아빠는 이 파랑새 극장 앞에서 처음 만났고, 낙산공원의 성곽 위에서 맥주 마시는 것이 내가 가진 로망 중 하나인데 그건 불법이다 라는 시답지 않은 말들을 하며 열심히 걸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고, 지친 너를 두고 나는 경쟁하듯 열심히 오르막을 걸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또 너를 놀라게 하려다 실패를 했던 날. 조금은 쌀쌀한 날씨에 해가 지는 것은 못 보고 다시 내려오며 일부러 사람이 없는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갑자기 삼선동이 나와 당황했던 날. 그 날 좁은 골목의 계단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돌아가는 풍향계가 쓸쓸했지만 아름다웠고,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담으려 숨을 참고 있었다. 가로등에 붉은빛이 하나 둘 들어올 때쯤 들려왔던 아이들의 소리. 당찬 가위 바위 보 소리가 골목 사이의 적막을 찢었다. 그것도 아주 예쁘게.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둘쯤 되어 보이는 목소리가 빗장 친 창문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를 숨죽여 저장하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보며 함께 숨죽이는 너의 모습도 다 기억하고 있다.
히터 앞 마른기침소리처럼 건조했던 겨울이 단숨에 새순이 돋는 봄이 되었던 순간. 나는 또 이것을 어떻게 간직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결국 미소만 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