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이 많은 성미 탓에 여행을 계획할 때면 늘 곤혹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곤 합니다. 가고 싶은 장소에 비해 머물 날들이 많지 않은 것이지요. 여행을 떠날 때면 최대한 오래 머물고자 노력하는 편이나, 사실 정답은 시간이 아닌 욕심에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여행 동안은 그 욕심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일정에 맞지 않던 계획과 그로 비롯된 아쉬움이 이번 여름 저를 또 이곳으로 안내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오하라 마을이란 곳에 다녀왔습니다. 교토의 중심부와는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어 지난 여행에서 포기했던 곳이지요. 느즈막히 몸을 일으켜 빵 한 조각을 물고 버스를 탔습니다. 시내를 조금 빠져나오니 진한 녹음이 버스 안으로 쓸려 들어왔고, 구불거리는 길을 한참 달려 저는 결국 그 곳에 도착했습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 같았어요. 귀엽고 촌스러운 장식들, 걸려져 있는 빨래에서 보이는 소박함, 어딘가 나른해보이는 사람들이 좋아서 자주 두리번댔어요. 꼭 길 잃은 어린 아이처럼 마을을 헤맸습니다. 보고 싶었던 절에도 들렀어요. 믿지 않는 신에게 몇 가지의 바람을 고백하는 제 모습이 웃겨 혼자서 피식- 대기도 했지요.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 장식을 귀여워하는 사람들이 더 오래 눈에 밟히곤 했습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어요.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유는 꼭 알아야 할까요? 중요한 이유, 중요하지 않은 이유, 확실한 이유, 말도 안되는 이유, 뻔한 이유 — 이런 많은 이유가 있다면 알 수 없는 이유도 있을 법 하잖아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600년 된 소나무, 사무라이들의 피가 묻은 천장,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진 건축 구조, 정돈된 이끼와 저마다 다른 색을 지닌 나무들을 누리고 왔어요.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제 몫이 아닌가봅니다. 돌아오는 버스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있었어요. 그래도 이 아쉬움이 또 한 번 나를 이 곳에 데려다 줄 지도 모르잖아요? 부족함이 있어야 다음을 기약할테니까요. 내년의 6월에도, 어쩌면 매년 6월에 나는 이 곳에 있지 않을까— 겸연쩍게 그런 상상을 해보는거죠. 그치만서도 한 편으론 이런 의문도 듭니다. 다시 할 수 없는 것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떻게 생각해요? 다시 듣지 못하는 음악, 다시 볼 수 없는 얼굴, 다시 먹을 수 없는 음식, 다시 느낄 수 없는 감정까지도. 그런 상황은 어떤 마음으로 다뤄야 할까요?
글쎄요. 오래 생각을 해봤지만 별다른 혜안도 떠오르지 않고, 알 수 있다는 자신 마저 생기지 않습니다. 마지막은 얼굴이 없어요. ‘안녕! 내가 마지막이야, 잘있어.’ 하는 그런 상냥한 마지막은 없어요. 눈 앞에 일어나고 있을 때는 알지 못합니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지요. 문득 발견한 멍처럼, 상황은 없고 흔적만 가득한 그런 마지막. 내게 남겨진 그 자국에 대고 나는 자주 연습을 해요. 웃는 표정, 우는 표정 — 겪어본 여러 표정을 그 흔적 위에 그려보는 것입니다. 당황한 표정, 태연한 표정, 그렸다 지우길 반복해요. 그리곤 문득 깨닫는 것이지요. 어떤 표정은 다시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을. 마지막에 얼굴이 있다면, 아마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요. 다시 지을 수가 없는, 그런 표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