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성

by 승아

다양한 주제로 한결같이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 틀림없다. 예측할 수 있는 미래만큼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또한 매력적이다.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 무작위로 나열된 플레이리스트, 계획에 없던 만남, 일찍 떠진 눈, 생각지도 못했던 영화의 반전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 말하자면 변수 같은 것이다. 반복되는 생활 패턴 속에는 항상 변수라는 것이 톡, 튀어나와 작거나 큰 변화를 가져온다. 나는 요즘 대화의 형식으로 그런 예측 불가능한 순간을 기껍게 맞이하고 있다. 공놀이처럼, 높거나 낮은 목소리를 퐁- 퐁- 주고받고 있으면 꼭 헤엄을 치는 기분이 들곤 한다. 때로는 깊고 때로는 얕게. 그저 흐르는 대화에 몸을 맡기면 된다. 내키는 때를 찾아 숨을 고르고 다시 깊게 때로는 얕게 유영을 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바다를 나는 그렇게 만끽했다.


그리고는 두 바다가 만났다. 퐁- 퐁-주고받는 말이 맞닿는 순간들이 있었다. 덜컹, 소리가 났다. 예상치 못한 것이 불쑥 나타났다.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큰일이 맞았다. 작게 시작된 소용돌이가 점점 더 커져갔고 결국은 모든 것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내가 사는 곳은 여전했지만 내가 보는 것은 여전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나무였지만 내가 알던 나뭇잎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바다였지만 내가 알던 파도가 아니었다. 나의 세계가 커지고 있었다, 여전히 볼록한 모양을 가진 채로. 해는 더 뜨거워지고 구름은 더 높아지고 색은 더 짙어졌다. 겪어 본 적 없는 나의 세계를 지금 나는 그렇게 걷고 있다. 익숙한 두 발자국과 익숙하지 않은 두 발자국으로.


깜빡, 자주 눈을 깜빡였다. 순간과 순간 사이의 또 다른 순간까지도 잊고 싶지 않았다. 숨은 가빠지고 발은 빨라지고 말은 많아지고 가슴은 두근댔다. 알고 있지만 동시에 알지 못했던 것을 만져보았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바다가 만나고 세상이 달라진 후로는 시간의 속도도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제 멋대로 해가 뜨고 졌다. 밀물과 썰물도 마찬가지였다. 종종 내 자신마저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작지만 확실한 변화 앞에서는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 몇 가지의 생각 뒤로 놀라움과 불안함이 똘똘 뭉쳐 복잡한 모양새로 마음속을 굴러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알고 있다. 결국 다시 또 한 걸음을 내딛겠지. 조금 더 용감한 자세로, 기꺼이 겪어보겠다는 의지와 몇 가지의 바람을 안고서 말이다. 가능한 오래 이 곳을 경험하고 싶다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양, 나뭇잎이 익어가는 색깔, 눈이 쌓이는 속도까지. 선명한 네 발자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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