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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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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슬 Jun 13. 2021

좋아하는 것이 더 이상 설레지 않을 때


차 마시는 건 여전히 좋아하는데 차에 대해 할 말이 없어진 때가 있었습니다.

할 말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갈수록 할 말이 줄어들고

맛있었다, 맛없었다, 그저 그랬다밖에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있었죠.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정이 식은 걸까?

하지만 차는 여전히 좋아하는데. 왜 할 말이 없는 걸까.


표현할 말도 설명할 말도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단답형으로 몇 마디의 말만 떠오를 뿐.


권태기, 라기엔 그런 기간이 꽤 길었어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꼭 설명하고 길게 이야기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덕분에 차는 꾸준히 마시고 있지만 의문 부호를 가지고서 계속 마셨습니다.


그래서 차 마시는 방식을 바꿔야 하나 했는데 저는 게을러서 그냥저냥 그대로 마시고 있었어요.


차 도구나 물에 따라 맛이 다른 걸 느끼는 건 재밌을 것 같지만 

따지고 싶지 않은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랄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은.

그런 의미에서 차 덕후라고 말하기엔 어중간, 하다기보다 한참 먼. 그냥 차 좋아하는 사람에 멈춰 있었습니다.


'이 차의 본질을 알고 싶어..!' 이런 마음은 안 들었달까요.

그냥 맛있게 마시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그렇게 열심히 노력은 안 하고.

'이 차의 포텐셜을 끌어내고 싶어! 제일 맛있게 우려낼 거야!' 하는 마음이 없었어요.


솔직히 맛있는 차는 정말 이상하게 우리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도 맛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맛있는 차 마시고 싶다는 결론으로만 늘 이어지고.


저는 하늘을 정말 좋아합니다. 늘 거기에 당연한 듯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나에게 차 마심이란 뭘까? 생각해봤는데

하늘 바라보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하늘을 올려다보던 마음.


그 권태기는 제가 원하는 차와 현실의 차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도 뭔가 떨떠름한 기분으로 차 마시고 있었는데

어찌 됐든 결론은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에서 나에게 맞는 차를 마시자는 것이었습니다.

고민한 거에 비해 정말 뻔하고 간단한 결론이 났죠.


기호 식품으로서의 차의 의미를 잊고 있었던 것 같아요. 즐기기 위함인데 즐기지 못했달까.

애초에 즐거우려고 마시는 음료인데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하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맛있는 차' 라는 기준이 참 애매합니다. 제가 구입할 수 있는 차의 가격대도 한정돼있고요.


그래도 또다시 햇차를 마시고 새로운 차를 만나면 기쁨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언제라도 찻잎 한 줌으로 행복해하고 싶습니다.


차 한 줌에 눈을 빛내며 설레하는 것. 

하루를 어쩌면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 

차만이 줄 수 있는 위안. 삶을 관조하는 방법을 배우고 침묵과 고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 

꽃향기로 가득 찬 숨을 쉬게 하고 땅에 발을 딛게 만드는 것.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상과 하나가 되는 순간.


늘 같은 마음으로 좋아할 순 없지만, 언제나 차를 좋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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