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차 이야기

차 마시면서 변한 것

by 소슬


원체 날이 서 있고 예민한 편이라 따로 감각을 벼리거나 할 필요는 없어서 좋았던 것 같다.

차 마시고 나서 변한 건 역시 모난 부분이 깎이고 좀 더 차분하게 주변과 나를 관망할 수 있게 된 것.


가능하면 마실 수 있는 모든 차들을 마시자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 차가 취향이든 아니든 일단 마셔보자는 생각은 그대로다. 덕분에 크게 호불호 없이 이것저것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여튼 차든 사람이든 상황이든 그럴 수도 있지 너도 맞고 너도 맞다 하는 황희 정승 마인드가 되는 데 차가 큰 기여를 함.

한 번 마시고 취향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줬고 안목이라는 것을 기르는 데 차가 한몫 두둑이 한 것 같다.


차가 맛있는 날도 맛없는 날도 있듯이 삶이 즐거운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는 것을 좀 더 긍정하게 됐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차가 맛있어서 기분이 좋은 그런 단순한 삶을 살게 됐다. 지나가는 계절도 빛도 시간도 사랑할 수 있게 됐다.


싫어할 이유도 미워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좀 더 명확하게 깨닫게 됐다.

차는 차고 사람은 사람이며 공간은 공간이라는 선을 확실히 그을 수 있게 됐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됐다.

긍정하는 법도 지나가는 시간을 흘려보내는 법도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아두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됐다.


뭐랄까 차가 삶에 너무도 녹아들어 버려서 차 마시는 삶 이외에는 상상할 수가 없다.

내 많은 것을 지탱하고 있고 많은 부분을 형성하게 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할 마음을 먹게 해 준다.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숨 쉬고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차를 마시며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을 다듬고 보살피는 과정에 가깝다. 빠지고 헐거워진 부분을 채우고 모난 부분을 다듬어가는 그런 과정.


물성을 지닌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자유롭게 체감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차든 향이든.


뭐 줄줄이 적어놨지만 차 취미를 나 자신하고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고 차는 차다. 기호 식품에 자아를 투사하지는 않는다. 맘에 드는 것을 취사선택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냉정과 열정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