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건넛산에서는
고희古稀를 넘긴 겨울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첫눈을 맞으며 환하게 웃고 있네.
한그루 나무가
지게에 추억을 한 짐 짊어지고
미끄러운 자드락길을 꾸역꾸역 올라오더니
“어허, 바보들이 여기 다 모였군”
훌렁 벗어던진 알몸으로 겨울나무들 사이에 몸을 부비네.
출전/ 포켓 프레스 ‘향기 나는 시’에서
--------------------------------------------------
경남 하동 출생. 1974년 시전문지<풀과 별>추천완료. 부산시인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현)경기시인협회 부이사장.
"셋 동인" 시집 <사랑>등 8권. 부산문학상, 한국시학상 등 다수 수상.
겨울 산, 맨 몸으로 겨울을 견디는 용기는 경이롭다.
그것은 ‘고희‘를 넘긴 ’겨울나무’들이 공유하는 추억의 힘
(온기)때문이다. 자연(나무)과 인간의 병치(倂置)구조가 공감의 폭을
넓혀준다.
‘첫눈’을 맞은 나무에서 ’노년‘을 떠올리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고난을 넘어선 ‘유년’의 동심을 느끼게 한다.
추억을 먹고 사는, 그래서 ‘바보’가 되지만 ‘알몸’으로 벗어던진
무욕(無慾)의 자유를 획득한다.
이제 그 질긴 ‘추억’의 집착까지 내려놓으면 허공(眞如)에 더욱 가까이
닿을 것이다.
더 넓게 보면 현실과 이상(理想)의 병치구조 이기도 한다. '겨울 산'은
고난의 현실이자 가혹한 삶의 현장이다.
우리의 정치 사회 현실은 무겁고 따갑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유유자적하는 이상적 삶의 동경은 더 아프게
꼬집는 삶의 역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