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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Aug 15. 2020

꽃-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않는가


                                             이육사 문학관 육사 시비


시와 현실 6 / 가슴으로 읽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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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 때애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북쪽 쓴드라에드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음자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따라 타오르는 꽃성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


*쓴드라: 동토의 툰드라

*꽃맹아리: 꽃의 경상도 방언

 

*출전/ 육사시집(1946) 유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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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육사 (1904-1944)


3줄 약력

1904 경북 안동 출생, 본명, 이원록, 시인 독립운동가

1933 <신조선>지에 <황혼>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

1944 북경 내구동에서 사망, 1946 유고시집 발간


 

////////////////// 窓과 創 //////////////////



絶命 시, 극한 상황 이겨낸 미완의 ‘약속‘



이육사의 <꽃>은 그냥 꽃이 아니라 확신에 찬 ‘약속‘의 희망이다.

일반적인 꽃의 이미지, ‘아름다움‘이거나 ’낭만적‘ 이미지와는 다른 강렬한

의지의 표상이다.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극한의 상황에서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하고 되묻는다. 화자의 가열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결코 저버리지 못할 ‘약속’은 곧 ‘꽃성’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다위에 떠있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다. 

   마치 그의 다른 시 <절정>에 나오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와 유사한 이미지. 불가능의 

세계지만 결코 허구일수 없는 가능의 세계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응축된 정신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

그 ‘약속‘의 절대성은 곧 자연의 섭리다. 겨울이 가면 봄은 오듯, 가혹한 오늘이

가면 ‘꽃성‘의 내일이 도래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육사의 다른 시 ‘청포도’에서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의 ‘손님’과도 유사한 이미지다.

오늘은 광복절, 육사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날이다. 하지만 광복을 불과 한해 앞두고

그는 낯선 이국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연전에 안동의 이육사 문학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월 석양 무렵, 어둑한 산야에

희디흰 찔레꽃이 환영처럼 피어있는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육사가 고향에 오면 걸었을 이 길을 

따라 소쩍새 울음소리 들으며.

진성이씨 퇴계 종택, 오래된 옛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육사가 힘들 때 가끔

들러 쉬었다가는 그 방이라 했다. 다음날 문학관에서 육사의 유일한 혈육인

외동딸 이옥비 여사를 만났다.

아버지 육사의 시 가운데 <꽃>을 제일 좋아 한다 했다. 자연의 꽃이 아닌 강인한 정신세계를 

보여주기 때문 이라고. 필자의 시집과 대학원 연구논문 <이육사 시 연구, 시간 공간구조를 중심으로>

한권을 건네자 여사는 소녀처럼 환하게 웃었다.


(글-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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