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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Oct 19. 2020

세상이 왜 이래, 무정란의 시

시와 현실 11 / 가슴으로 읽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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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란(無精卵)의 시-기청



봄 햇살 눈부신 고향집 앞마당

갓 깨어난 햇병아리, 그 말랑한

노랑 부리로 물 한 모금 쪼아 먹고

하늘에 감사하던, 그 천성

얼마나 순박하던가


몇날 낮밤을 식음을 전폐하고

눈비 맞으며 알을 품던, 그 어미는 또

얼마나 지순(至純)한 자비

희생으로 도리를 다 하던가


내 이제 그 어미의 사명,

대대로 이어온 민초들, 질긴 근성으로

시(詩)의 알을 굴리고 굴려보지만


세상이 왜 이래 노래가 왜 이래

시끄러운 뽕짝이 왜 이래

멀고먼 테스 형이 어쨌다고

눈을 가린 까만 어둠 사방에 드리우고

수치를 모르는 종족, 끝없는 행렬

두껍고 뻔뻔하면 다 되리라


미친 강남 집값이 왜 저래

굶주린 라임 옵티머스가 왜 저래

적의 총 맞고 죽은, 공무원이 왜 그래

뭉개고 재 뿌리는, 거꾸로 추녀(秋女)가

저리 설쳐도 시치미 떼는 철면피가 ,왜 그래

눈치껏 방망이 두드리는, 달바라기 판사가 왜 저래

차벽산성으로 광화문 구중궁궐,

촛불은커녕, 전봉준의 횃불도 얼씬 못하는

민주공화국이 왜 이래


날밤 새우며 알을 굴리고 굴려도

노란 주둥이의 ,반가운 삐약 소리는커녕

물 한 모금, 하늘에 감사하는

그 순박한 천성은커녕


갈수록 멀어지는 우리, 기다림은

새하얀 동통(同痛)의 기약

이 거룩한 아침, 눈조차 뜨지 않는

깊은 잠 속

무정란(無精卵)의 시여.





▶출전/ 미발표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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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기청氣淸 시인, 문예비평가


3줄 약력

동아일보 신춘문예 (나의 춤) 당선(1977)으로 문단데뷔

이후 시 문예비평 칼럼 다수 발표, [시인과 문예통신] 운영 주필

시집으로 <길 위의 잠> <안개마을 입구>외, 시론집 <행복한 시 읽기>출간



///////////// 窓과 倉 ///////////////////////


세상이 왜 이래, 우리시대 동통(同痛)의 화두


▶요즘 한 대중가수의 신곡이 장안을 울리고 있다. 오래 활동을 중단해온

그의 궁금증도 더하지만, 곡과 가사의 울림이 대중적 공감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아픔을 대신해서 풀어낸 동통(同痛)

정서가 동질감을 자극한 것이다. 처음 라디오에서 아 테스형, 하길래

무슨 뚱딴지같은 ‘뽕짝‘인가 했지만 뭔가 다른 게 있었다.

시대현실의 풍자와 애수의 정조, 왜 그래 하면서 반복해서 자문하는 형식이

공감을 불러오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대중가요는 나름대로 그 시대의 빚을

갚으려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문학은 왜 그래, 시는 왜 그래, 자문해본다. 문학은 어디에 있는가

시는 어디에, 그 거룩한 격식의 자태로 늘어진 가락의 풍류로, 이 시대의 아픔을 위무해주고 

있는가?

필자의 <무정란의 시>는 이런 자문(自問)의 답을 찾기 위한 것이다. 병아리를 깨우는 어미의 

인내로 그 본질인 순수(잠자는 진실)를 깨워 보려 하지만, 감감 소식이 없다. 뒤집힌 현실에서 

답을 구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다림은 단지 무위의 낭비로 끝날 것인가?


의식의 깨어있음, 그것은 곧 자아성찰이며 시대정신의 산고(産苦)가 아닌가?

소크라테스의 충고는 이 시대에도 유효한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곧 자신을 포함해 현실을

 ‘깨어서‘ 직시하라는 뜻이다. (물론 이 말의 근원은 그 보다 앞서 붓다가 제자들을 위해 던진 

’自燈明 法燈明‘의 간곡한 당부의 말이기도 했다.)

‘세상이 왜 이래 노래가 왜 이래’ 이하는 시적 자아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거부는 동시에 오늘의 모두가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무수한 의문들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지만 이에 답하는 어떤 쥐꼬리만큼의 양심이나 정의도 없다.

그래서 화자의 ‘기다림‘은 결국 무정란의, 동통의 화두로 남지만 결국 시대와 역사의 명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기청, 시인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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