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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Mar 25. 2021

찬란한 슬픔의 봄을-모란이 피기까지는


[시와 현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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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五月 어느날 그 하로 무덥든 날

 

떠러져 누운 꼿닢마져 시드러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뻐처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믄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잇슬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출전; 영랑시집 (1935. 시문학사) 초판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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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영랑 (시인)           


   

본명; 김윤식 전남 강진 출생

《시문학》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활동(1930)

첫 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출간 1935

유고시집 <모란이 피기까지는>1981 출간.


  

////////////// 窓과 創 ////////////////  



▶이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잔잔히 읊조리면

내면의 자아와 연길되는 각성覺醒을 가져온다.

알 수 없는 존재의 고독, 그 희망과 절망의 양면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마치 유치환의 <깃발>처럼 ‘소리 없이 나부끼는’

존재(본질)의 허무를 일깨워 준다.

김영랑은 순수시 계열의 유미주의唯美主義 풍의 시를 즐겨 쓴다.

아름다운 우리말 그 자체의 순진무구함으로 정신을 맑게 깨어나게

해준다.

이 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게 해준다 


▶하나는 순수서정으로 표현론의 관점에서 보는 입장이다.

운율 어조 표현법 등 외형을 보면 단순한 서정이다.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기)

->모란이 진 슬픔(서)->모란이 피기를 기다림(결)의 단순 구조다.

절망의 현실에서 희망의 5월을 간구하는 소망과 결의를 노래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시간배경을 고려한 반영론 혹은 의미론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작품이 씌여진 시기가 일제 강점기인 것을 고려하면

어떨까? 서슬 퍼런 일제의 감시아래 저항은 곧 생의 절멸을 의미한다.

그 대안으로 순수시란 일종의 유토피아 지향의 심정적 도피를 꿈꾸게 된다.

그것은 어떤 사상과 검열도 눈치 챌 수 없는 은밀한 그들만의 샹그리아인

것이다.

일제의 사상탄압이 가중되자 문학의 탈정치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30년대 초의 시문학파가 중심이 된 순수시 운동, 후반의 모더니즘 경향과 함께

생명파 계열에 속하는 일련의 작품이 이런 범주에 드는 것이다.


▶그것은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존재론적 각성의 세계다.

모란의 피어남과 떨어짐(생의 원리에 대한 깨달음)->생명의 모순과 숙명적

비극성의 탄식->기다림의 전이와 도치倒置(생명의 원리에 대한 새로운 각성),

으로 귀결된다.

현실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고난(절망)은 영원하지 않다.

현상계의 생멸生滅은 시절인연을 만나면 변하고 사라진다.

언젠가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모란이 피어나듯’ 희망은 찾아온다는

굳건한 믿음, 그것이야말로 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생성(개화)과 소멸(사라짐)의 경계에서 모란의 낙화는 슬픔이지만 희망의

기다림은 그에게서 ‘찬란한 슬픔’인 역설逆說의 봄인 것이다.


(글-氣淸, 시인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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