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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Apr 16. 2021

봄비-임 앞에 타오르는향연(香煙)과 같이


[ 오늘, 이 한편의 시]


봄비 / 이수복(李壽福)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출전; 시집 <봄비>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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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전남 함평 출생, 조선대학교 국문과 졸업

55년 {현대문학}에 <실솔>, <봄비> 등이 추천되어 등단

57년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69년 시집 {봄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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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는 미지의 섬으로 가는 통로


문득 세상이 너무 시시해지고 마치 세상의 끝에선 아찔함이 느껴지는 순간,

디시 현실로 돌아온다. 잔잔한 쇼팽의 피아노 선율이 귀를 애무한다.

어느새 차이콥스키의 ‘비창’이 애를 끊는 절절함으로 휘몰아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그저 망연한 자세로 꼼짝없이 포로가 된다.

봄은 소리없이 왔다가 자취도 없이 멀어져갈 것이다.

봄이면 뭔가 좋은 소식이라도 올 것 같은 기다림이 있었다.

설렘과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세상쪽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 쨍그렁 부딪히는 아귀다툼으로

날이 샌다. 그리고 봄날은 싱겁게 우리를 밀어낼 것이다.

봄비가 온다

우리 허전한 가슴에

우리 깊은 시대의 밤바다에.

 

<봄비> 가슴으로 읽기

▶이 시는 봄비 내리는 날의 애상적 정서를 7·5조의 음수율과 3음보격의 민요조로 표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수복의 시는 섬세한 감성과 한국적인 정감을 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시는 자연에 대한 관조적, 친화적 태도를 전통적 율조에 의탁하여 형상화함으로써 전통 서정시의 장점을 고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적 화자는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시어와 '강나루' → '보리밭길' → '꽃밭' → '들판'으로 시선을 확대시키는 방법을 통해 봄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한편, 으레 그러리라고 짐작되는 것을 다짐하여 말할 때 쓰는 '―것다'라는 종결 어미를 반복함으로써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전달하고 있다. 이 시가 봄의 생명력을 예찬하는 작품이면서도 전통적 애상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봄은 화자에게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 숨어 있던 임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일깨워 줌으로써 봄비 그친 뒤 강 언덕에 짙푸르게 솟아날 풀잎 같은 서러움을 맛볼 계기가 되는 것이다. 마침내 4연에서는 봄의 상징물인 아지랑이를 '임 앞에 타오르는 / 향연'으로 표현함으로써 화자가 서러움을 느끼는 이유, 즉 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봄의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를 통해 임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함으로써 절망적인 분위기로 나아가는 것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한국 현대시 400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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