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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Jun 30. 2021

대선 전쟁, 운명의 날이 오고있다

정치 에세이]


대선 전쟁, 운명의 날이 오고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전초전에 불이 붙었다. 너도 나도, 여야를 불문하고 출마선언이 줄을 잇는다. 백화요란 용사혼잡(龍蛇混雜), 어차피 뱀과 용이 섞여 사는 세샹이니 나무랄 수도 없다. 다 좋은데 이 사람들, 정신 줄은 제대로 챙기고 있는지. 세수하면서 제 얼굴 제대로 보고 있는지, 남은 거울에 비친 나를 어떻게 보는지 이런 성찰을 잠시라도 하는지 궁금하다. 이런 성찰 없이 ‘망둥어가 뛰니 꼴뚜기도 뛰는’ 식의 막무가내 출전이라면 자신도 욕먹고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번 대선출마 예상자 가운데는 특이한 현상이 눈에 띈다. 여권의 경우는 너무 밋밋하다. 그 얼굴이 그 얼굴, ‘도토리 키재기‘다. 사실 도토리 수준도 안 되는 함량미달의 눈칫밥 얼굴도 보인다.

야권의 경우는 다르다. 당초 여권 출신 주요인사가 야권 쪽으로 유턴한 경우다. 전 검찰총장을 비롯, 감사원장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건 뭘 말하는 것인가?

이게 아니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자진해서라기보다 ‘부추겨서’ ‘가만두지 않아서’ 그들이 결심하게 된 것 아닌가?


병 주고 약 주고, 어쩌면 각성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게기가 된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정치중립 운운한다. 감사원장 사표를 당일치기로 수리하면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고 일갈한다. 그런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데 가장 기여한 사람이 바로 인사권자 아닌가?

윤석열 전 총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의 대선출마 선언은 오랜 가뭄뒤의 단비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적셨다. 그의 키워드는 ‘자유민주’ ‘공정’ ‘상식’이다. 이 안에 공동체의 모든 가치가 함축되어있다. 어쩌면 너무 진부하기까지 한 이런 흔한 어휘가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와 전혀 새롭고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 그런 가치들이 부재한 현실의, 뼈아픈 경험 때문이 아닌가?

그의 출마선언은 분명 억눌린 자의 카타르시스 였고 소시민의 희망이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못 살겠다 갈아보자”이다. 시대와 역사는 변했지만, 그 정신 그 열망은 여전히 시대정신으로 온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양심과 민심의 불멸성이다. 마그마와 같은 분화의 열정과 역동성이다.


보수와 진보, 낡고 위험한 이념의 폐기물 청산해야

새로운 가치, 공생 통합이냐 분열 공멸이냐의 대결

 

이제 진보니 보수니 하는 낡은 이념의 환상을 깨야한다. 우선 말 그대로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국민의 호된 심판을 받았고 지금도 진행행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불변의 가치, 인간성 기본윤리

선(善) 지향의지는 존중되어야 한다.

진보는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선구적 의지를 말하지만, 지금의 이른바 진보세력이 그러했던가? 오히려 자유 민주를 억압 퇴행시키고 임기 내내 과거로의 회귀에 열을 올린 자들이 스스로 진보라 할 것인가?

이 정권은 겉으로 진보를 표방하며 기득권 세력으로 급부상한 ‘진보귀족‘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자산들은 아직도 ’죽창가’를 부르는 혁명세력으로 착각한다.


이념과 현실의 부조화 현상은 갖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근원적으로 자기모순에서 시작한 운동권 정권은 임기 말까지 모순과 위선(僞善)으로 줄타기 모험을 즐긴다.

이젠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행패를 서슴치 않고 있다.

법치의 보루인 검찰권력의 사유화, 국민의 감시자인 감사권의 무력화, 민주주의 핵심가치인 ‘자유‘의 훼손, 지배 권력의 우상화, 나아가 건전한 상식과 윤리마저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오늘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의 진면목(眞面目)인가?

진보와 보수의 위치가 바뀐 마당에 이젠 낡고 위험한 이념의 찌꺼기를 폐기처분해야 마땅하다. 새로운 가치는 공생 통합이냐 분열 공멸이냐의 대결이다

.

‘못 살겠다 갈아보자’ 아직 유효한 민심의 시대정신

새 시대의 메신저?- 조화로운 품격의 통합지향형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는 새 시대의 메신저는 누구일까?

열정과 용기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분출하는 역동성을 차분히 가라앉혀줄 이성의 힘이 필요하다.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 그것은 사려 깊은 품성이다. 포용하고 잘 듣고 잘 새기지만 위기를 만나면 응변(應變)을 넘어 합리와 예측으로 통합할 수 있는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면 현실에서 그런 지도자감이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머리를 잘 깎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속담에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연습하고 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어느 날부터 머리 깎는 일이 귀찮아졌다. 그래서 한동안 영락없는 산거(山居)행자 모습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또 긴 머리 감는 일이 얼마나 귀찮은지도 알게 되었다. 결심 했다. 내 머리는 내가 깎겠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자꾸 가위가 헛 자르고 마치 구름 환상을 잡듯 빗나갔다. 그러기를 얼마가 지나니 우연이듯 내가 겨냥한 머리카락이 잘려나기 시작했다. 이젠 왠만한 이발사 못지않게 내 머리를 내가 깎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필자는 그런 쪽하고는 거리가 먼 재가 산중거사일 뿐이다.

 

이제 결론으로 들어간다. 거울에서 나가 아닌 그림자를 보지만 나의 실상은 무엇인가?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몸이나 생각을 자신이라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변하고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다.

나의 본질은 양심이나 깨어있는 의식 자체이다. 의식의 각성을 통해 나와 남을 비추어보는 지혜, 뒤집어도 보고 남의 편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그런 안목을 지녔다면 능히 세상을 품어도 좋지 않을까.

현실에서 대안을 찾자면 윤석열의 정의감 열정 용기와 최재형의 차분한 이성이 만나면 아마도 이상적인 지도자상이 되지 않을까?


다시 현실에 적용하면 두 사람이 협력 보완의 관계로 단일화 한다면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일단계로 정권교체라는 모두의 소망을 현실로 안겨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임기 중에 개헌을 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고 권력을 견제하는 보다 명시적인 헌법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 민주주의 핵심가치인 ‘자유’를 흔들지 못하게 붙들어 매야한다. 짧고 명료하게 새로운 가치를 회복하고 혁신을 한다. 그런 다음 다음주자에게 미련없이 바톤을 넘겨주면 좋을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상생과 통합이다. 국민을 하나로 국가를 하나로 다시 뭉쳐야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 함께 사는 길이고 우리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우리의 찬란한 미래인 것이다.

(글-靑史,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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