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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Aug 27. 2021

초정 김상옥 자선 대표작 부재(不在)

-연재 시가 있는 산문 3



월간 /문학공간/ 연재 <21. 7월 원고>


詩가 있는 산문 3 / 부재(不在) (초정 김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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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초정((艸丁) 김상옥(金相沃) 시인, 그는 다재다능한 예술혼의 현신(現身)이었다. 서예 미술 전각 고미술품 등 주변 예술에도 일가를 이룬 종합예술가 였다. 그러면서 본업인 현대시문학의 꽃을 피운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현대시와 시조, 양수 겹장의 필력으로 문단을 종횡무진 했다. 그 시의 초기 시의 주제는 <초적(草笛)><봉선화><사향(思鄕)>등 대체로 고향 통영 바다의 안온함과 평화가 깃들어있는 향수를 노래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몸은 혼탁한 대도시에 살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향집 감나무를 그리며 산다고 했다. 고향은 초정에게 현실의 번민을 포근히 안아줄 정신의 유토피아인 셈이다.

하지만 중기 이후 더욱 심화 세련된 한국적 토속의 정서가 주조(主調)를 이룬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한국인의 정체성을 시의 언어로 정갈하고 멋스럽게 되살려 내었다. 그의 시에는 우리의 얼, 우리의 혼이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런 한국적 전통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의 유별난 고미술품 사랑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때 인사동에서 고미술품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다. 갖가지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비롯 고서화를 접하면서 떠오른 영감으로 시를 지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찬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중략) // 갸우숙 바위틈에 볼로초(不老草) 돋아나고 /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시〈백자부〉에서


이런 결 고운 백자의 빛깔, 얼비치는 조선의 혼은 이름 모를 도공(陶工)의 세련된 손끝을 거쳐 뜨거운 불의 기운과 지수화풍(地水火風)이란 인연의 조화로 탄생한다.

그렇게 터득된 우주의 이치와 예술적 표현본능이 만나 그의 위대한 언어예술인 문학으로 승화된 결과다. 

그러나 김상옥 시인의 관심사는 그기에 머물지 않았다. 후기에 올수록 다양한 주제로 확대 심화되었다. 완성을 향한 그의 시업(詩業)의 ‘니르바나‘가 꽃불처럼 일렁이는 것이다. 불교의 존재론적 이해와 심오한 오도(悟道)의 경지까지 

포착하려는 불교적 정신세계를 다룬 작품도 보인다.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외, 이번에 소개하려는 작품 <부재(不在)>가 그런 계열에 속한다. 단 3행(장)으로 된 간결한 시 속에 어떤 미지의 

낯선 세계가 담겨 있는 것일까?


문(門) 빗장 걸려있고 섬돌 위엔 신도 없다.


대낮은 밤중처럼 이웃마저 부재(不在)하고


초목(草木)만 짙고 푸르러 기척 하나 없는 날,


-부재(不在) 전문


출전/ 김상옥 시전집, 창비 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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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초정 김상옥(1920-2004)


호는 초정(艸丁, 草丁). 경남 충무 출생.

김용호, 함윤수 등과 <맥> 동인으로 활동(1938)

39년 시조 <봉선화>가 [문장]지 추천완료.

4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되어 등단.

노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초적>, <고원의 곡>, <이단의 시>, <목석의 노래>,

<삼행시>, <먹을 갈다가>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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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행시 형식의 잠언시-시공간 넘은 超越의 세계

현대문명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 담아


단 세 줄로 된 3행시 형식이다. 시조를 스스로 3행시라 이름 지었다. 시조의 정형성을 넘어 자유로운 시적 경지를 추구하는 정신이 스며있다. 시 <부재>는 무엇을 말하는가?

제목 그대로 아무도 없음이다. 즉 주변 상황묘사만 있고 정작 인물은 없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천재지변(코로나 팬데믹)으로 인류가 갑자기 사라진 것인가?

수많은 그의 명작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80년대 후반, 필자가 한 교양지 편집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명사들의 ‘자선 대표작‘ 인터뷰를 위해 초정(艸汀)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

놀랍게도 그는 자선 대표작으로 <부재>를 들었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비중 있는 그런 작품인 셈이다. 교과서에 실린 


유명작품도, 초정다운 그 유려한 멋과 품격도 아니었다. 단 3줄짜리의 고백록 같은 어쩌면 이 시대의 유언 같은, 짧은 경고문 같은 그런 암시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과학문명의 꿀맛에 취해 산다. 탐욕의 절제를 망각했다. 자연의 윤리를 배반했다. 끝없이 질주하는 속도와 무한의 경쟁 속에서 자아를 상실했다. 그런 불행한 현대인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러면 3행시 <부재>에 대해 작자 자신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초정선생은 자신의 시에 대해, “아직 창조가 이루어지기 전 태초의 어느 날“이거나, 인류가 ”멸망한 이후의 적멸(寂滅)“을 생각하면 될 것이라 하였다.

어쩌면 불교적 초월의 세계, 시공간이 무화된 진여(眞如) 본질의 세계를 극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초정의 작품 세게는 대체로 한국의 토속적 전통과 그 안에 녹아있는 고결한 정신세계를 그렸다, 하지만 시 <부재>는 소재와 내용면에서 이채롭다. 다분히 현대문명의 비판, 인류 미래를 예견하는 준엄한 경고와 같은, 숨조차 쉴 수 없는 적막이, 공포와 경이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잠언(箴言)의 시다.

어쩌면 우리시대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할 수도 있는, 그런 비현실의 현실, 

그날을 예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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