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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Oct 07. 2021

열락(悅樂)의 바다-적멸의 무인도


[문예21 新刊산책] 

                                                   


월간 [문학 세계] 발표 원고 

/   21. 10월호 초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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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락(悅樂)의 바다

- 기청

  

어디쯤인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익명(匿名)의 바다

시간이 녹슬지 않는 영원의

 

전철에서 내려 낡은 시외버스 갈아타고

가다가 목마르면 

제주도 생수 한 모금

아무데나 내려 

밭두렁 길 하염없이 거닐다가

목이 칼칼하면 

백두산 심층수 한 모금


아직 잠을 덜 깬 혼미(昏迷)의 꿈길 헤매듯

얼비치는 파리한 바다의 얼굴

뜨거운 눈물 마구 흘리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바다여, 어디쯤인가

그 너머 적멸(寂滅)의 무인도 어디쯤

홀로 기다리고 있을 낯선 나


파도소리커녕 외론 물새소리도 오지 않는

기억의 저편, 저 혼자 넘실대는

바다가 너무 멀어

어디쯤인가, 생멸이 없는

열락(悅樂)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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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 NOTE-흔들리는 등대에서]


삶의 두 갈래길-싸움의 길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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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싸움이 있는 현실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의 평화가 있는 깨어남의 길이다.


서구의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고 말한다. 

에고가 지배하는 집착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여기>의

고요한 침묵(본질)을 별처럼 깨어서 보라는 것이다.

  

한 행인이 모퉁이길을 가고 있을 때 거지가 말했다.

“한 푼 주세요”

행인은 거지가 깔고 앉아있는 낡은 상자를 보고 물었다.

"이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거지는 그냥 의자일 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한번 열어보라고 권하자 상자가 열리고 

그 속에는 낡은 보자기에 싸인 갖가지 보물이 쏟아져 나왔다,


톨레는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운다,

우리는 괴로움의 해결책을 늘 밖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 모든 해결책은 우리 내면에 있다고 말한다.


필자의 시 <열락(悅樂)의 바다>는 두 갈래 길 중

평화의 길을 선택한 경우다.

내면의 탐구와 구도(求道)의 과정을 현상의 시공간으로

펼쳐 보인 것이다.


처음 90년대 초 강연 차 내한한 인도의 영성가 산트 타카르싱 구루(스승)를 

만나면서 <빛과 소리의 명상>에 입문했다.

그 뒤 불교에 입문하고 선원에서 위빠사나 과정을 수련하였다.

결국 참선으로 돌아왔다.  참선에도 간화선(화두참선)과 묵조선 계열이

있는데 지금은 후자에 더 치중하고 있다.-------


시적 자아가 경험하는 ‘논두렁 밭두렁’은 다양한 내면의 체험이다.

시적자아가 도달하고자하는 궁극은 ‘적멸(寂滅)의 무인도’ 어디쯤,

생멸(生滅)이 없는 ‘참나‘를 만나는 일. 

하지만 내 메마른 정신의 바다엔 언제나 

환영(幻影)처럼 아지랑이만 일렁일 뿐.


현상의 길은 에고가 지배하는 온갖 탐욕과 집착의 길이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무슨 무슨 게이트를 보라

현실의 정치는 한갓 개뼈다귀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굶주린 이리떼가 뼈다귀(돈 명예 자리)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물고 뜯고 싸운다.

편을 갈라 끝없는 투쟁으로 혼란을 부추긴다.

살아서 보는 아수라(싸움만 계속되는 세계)의 생생한 현장이다.


소시민의 선택은 언제나 침묵뿐, 침묵에도 두 가지가 있다.

그냥 무관심으로 침묵하는 경우와

깨어서 지켜보지만 침묵하는 경우다. 

현실의 정치에 대해 필자는 당분간(혹은 기약 없는) 후자의 

대열에 서기로 했다.

(글-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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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21 리뷰]-/월간 문학공간 21. 8월호/

                                                                                                         

 

詩가 있는 산문 4 / 청포도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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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한 시인의 작품을 시대와 관련해서 해석하는 것은 온당한 것일까? 

설득력 있는 한 방법이긴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다.  어떤 경우엔 오히려 작품에 누를 끼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작품 해석은 견해를 달리할 수 있고 언제든지 재해석 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도식적인 해석이 시의 본질에 멀어진다면 곤란하다.

지금까지 대체로 일제 암흑기의 작품을 억지로 독립운동과 관련지어 시를 해석하던 관행은 재고되어야 한다.  좀 더 시의 본질에서 시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시는 현실을 반영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의 본질과 이상은 더 넓고 높은 세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육사(陸史) 이원록((源祿본명)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퇴계의 후손이다.  뼈대 있는 선비 가문의 후손답게 육사의 6형제 중 삼형제가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일경에 고초를 겪거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조국광복을 위해 모든 걸 던졌다.  그의 시에 드러난 공간의 광활성은 독립투사로서의 행적을 말해준다.  또한 시간의 원대성(遠大性)은 지사로서의 풍모와 기상을 가늠케 한다.(필자의 <이육사의 시 연구, 시간 공간구조를 중심으로>1987 대학원 석사논문 참조)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곳

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절정’ 전문>

시 <절정>은 독립투사로서의 지사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강철로 된 무지개’는 절망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한 결의를 드러낸다.  <절정>이 ‘지사의 상징’이라면 그 반대편에 놓이는 ‘시인의 상징’이 바로 <청포도>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이육사 <청포도> 전문.


*출전; <문장>지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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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 이육사 (1904~1944)


시인 독립운동가

본명 이원록, 경북 안동 도산면 원촌리 출생

1925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에 가입 

1927 대구 조선은행 폭파사건에 연루 3년간 옥고

     (이때 수인번호 264가 필명이 됨)

1933 <신조선>지에 시 <황혼>발표

1937 신석초 김광균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

1946 유고시집 <육사 시집>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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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자아의 분출, 순수서정의 백미(白眉),

인간 본연의 순수와 이상을 그린 작품


시 <청포도>의 해석 또한 시대현실 반영의 도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근래에 도진순 교수(창원대)가 《역사와 비평》지에 ‘육사의 청포도 재해석‘  논문을 발표하여 관심을 모은바 있다.  시 <청포도>를 그의 독립과 혁명운동, 한시와 연계해 검토한 것이다.   청포도의 유래에 관해서는 당시 육사의 고향 안동의 원촌리는 물론 지금도 청포도가 없다고 한다.  다만 당시에 포항 해변가에 한 포도원이 있었고 육사가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오늘의 청포도 품종이 아닌, 아직 덜 익은 ‘풋 포도‘의 개념으로 보았다.

이어 도 교수는 육사에게 포도는 어린 시절 추억 향수보다는 오히려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내 고향‘은 특정 고향이라기보다 더 넓은 개념의 ’조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또 ’청포’는 원래 고위 벼슬아치들이 입던 공복(公服)이지만,  여기서는 천민이나 혁명가들이 입던 옷으로 해석하였다.

요점은 시 <절정>의 ‘강철로 된 무지개‘를 일제에 맞선 혁명으로, <청포도>를 조국 독립의 상징으로 해석하여 기존의 시대반영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육사의 작품 대부분이 쫓기듯 절박한 상황에서, 피를 토하듯 쏟아낸 것들이다.  시인 개인은 철저하게 억압되고 민족적 자아가 지배하는 비장(悲壯)과 불안 강박의 정서가 작품 전반에 깔려있다.  하지만 시 <청포도>는 다르다.   오랜만에 안정과 휴양을 위해 잠시 들른 고향에서 청포도를 보며 시인 본연의 이상 지향적 정신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억압되던 개인적 자아가 모처럼 풀려나 자유로운 분출을 한 것이다,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연과 생명, 인간 본연의 순수와 이상에 눈을 뜨는 것이다.

<청포도>는 육사의 시 가운데 드물게 순수서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우선 중심시어를 보면, 하늘, 푸른 바다, 돛단배, 청포(靑袍), 은쟁반, 모시 수건, 청포도---

시어 자체의 순수 고결 청량함이 부드러운 감성으로 짜여있다.  다음으로 생명을 상징하는 청색 심상(푸른 청포 청포도), 이상을 상징하는 열린 공간(하늘 바다)의

이미지가 어우러져 환상적 하모니를 이룬다.

시적자아가 기다리는 ‘손님’은 독립운동가라기 보다 ‘반가운 친구’거나 ‘닮고 싶은 맨토가 되는 고귀한 신분’이 더 어울린다.  중심 정서(주제)인 ‘기다림‘은 ’조국 광복‘이라는 도식보다 억압이 없는 ’인간다운 삶과 자유로운 이상추구에 대한 소망’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시의 본질에 어울린다. 

   

육사 개인이 꿈꾸던 유토피아를, 그런 민족이나 독립운동 같은 거창한 사명을 짊어지기 이전의 자연인 이원록이 꿈꾸던, 그런 세상을 노래한 것이 아닐까한다. 

육사는 시인이면서 독립운동가로서의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시는 시 본연의 시 정신에 빚지지 않았다.  육사는 <청포도>를 통해 인간 본연에의 향수를 그렸다. 가혹한 현실 너머 기다림의, 더 정화된 순수의 세상에 대한 향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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