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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Oct 31. 2021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김수영 '풀'

/문학공간// 21. 9월호 원고


시가 있는 산문 5  풀(김수영)

詩가 있는 산문 5 / 풀(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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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시에 관해 누가 묻는다면 정답이 있을끼? 새삼스런 질문을 던져본다. 또 출제된 시를 직접 쓴 작자가 문제를 푼다면 다 맞힐 수 있을까?

얼핏 우문(愚問) 같지만 본질을 찌르는 현문(賢問)일수 있다. 요즘처럼 시를 정형화된 잣대로 해석하는 악습에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다. 이런 문학이해의 정형화 몰개성화 현상은 학교 현장교육에서 특히 심하게 드러난다.


수능에 출제된 예시의 한 주인공(시인 겸 대학교수)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자신이 쓴 시가 나온 대입문제를 풀어본 결과 작가인 자신이 모두 틀렸다고 실토한다. 참 웃기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문제의 주인공은 현장 문학 입시교육의 문제점을 예리한 비유로 짚어냈다.

“시의 이미지는 살이고 리듬은 피요, 의미는 뼈다. 그런데 수능 시험은 학생들에게 살과 피는 빼고 숨겨진 뼈만 보라는 것이다. 그러니 틀리는 게 아닌가 싶다.”

독자의 다양한 창조적 개성을 말살하고 획일적인 감상을 요구하는 공교육의 문제점을 명쾌하게 지적한 것이다.

작자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이 일치할 수만 없다. 그렇게 보면 틀린 것이 오히려 자연스런 결과로 보아진다. 그보다 다양한 해석이야말로 시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창조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

김수영은 수능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시인 중 한명이다. 그러면 그의 문제작은 어떻게 정형화 도식화 되는 지 살펴보기로 한다. 그의 대표 시 <눈> <풀> <폭포> 등은 대표적 참여시 저항시로 평가받고 있다.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 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김수영의 <눈> 전반부


이 작품에 제시되는 중심 이미지는 ‘눈‘과 ’기침‘이다. 점층적 수사로 ’눈’을 강조한다. 원관념은 순수의 본질이지만 이에 대칭되는 현상은 기침으로 고난 아픔 상실을 함유하고 있다.

이를 두고 ‘현실에 대한 저항’이라는 도식적 해석을 온당한 것으로만 받아들일 것인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이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풀> 전문


*출전; ≪문학 예술≫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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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 김수영 (1921-1968)


1946 문예지 예술부락에 시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시작활동

1949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발간으로

모더니스트로 평가

1959 개인시집 <달나라의 장난>에 <눈> <폭포> 〈병풍등 발표

1958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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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지향 아닌 시 본연의 순수성 회복해야

정형화된 입시교육, 다양한 창조적 해석 존중필요

이념 지향 아닌 시 본래의 순수성 회복해야

정형화된 입시교육, 다양한 창조적 해석 존중 필요

김수영의 <풀> 역시 대표적 참여시 저항시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해석의 입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960년대는 정치적 억압을 벗고 자유로 나아가다 다시 억압으로 회귀한 시기였다. 이승만 독재로부터 해방되는 4·19 혁명과 자유에 대한 희열, 그리고 군사 쿠데타에 의한 민주 사회에의 좌절이 1960년대 지식인의 방황과 자기 모색의 근본 동인이었다. 시인들은 이같이 엄혹한 현실 속에서 문학적 응전을 펼쳤다. 김수영의 ‘풀’은 독재 권력에 맞서는 민중의 강인한 저력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수능특강 심화문제 <보기>로 제시된 글


이 글에서 정형화된 해석의 한 표준형을 보는 느낌이다. 이런 관점, 시대 상황을 중시한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해석의 정형이다.

이런 눈으로 바라보는 <풀>은 ‘민중‘의 상징이다. 바람은 외세(권력)의 억압, 시련이며 ’울음‘은 저항, 풀의 ‘일어나고 눕는’ 행위는 독재 권력에 맞서는 민중의 강인한 저력이 된다. 더 이상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 오세영(시인 문학평론가) 교수는 현대시 비평이 지나치게 이념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기인한다며 비판을 가했다.

<오교수는 “기회주의로 해석될 여지마저 있는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독재 권력에 항거하는 민중의식의 상징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절망에 이른 존재가 사랑의 단비를 통해 소생하는 인생론적 시로 봐야 한다”고 밝혀 기존의 관습적 평가를 뒤집었다.>

분명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이런 다양한 관점,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필자의 관점으로는 좀 더 본질적인 속살을 들추고자 한다.

‘풀’은 자연 순수, 그 너머 본질의 품성이다. ‘바람’은 이를 성난 회초리로 견책하는 냉혹 이다가 때로는 따뜻한 훈풍으로 감싸 안고 포용한다. 이런 다양한 정서 감정 품성을 통해 궁극으로 본질의 순수를 일깨워주는 자연의 섭리를 보여준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김수영의 다른 작품 <눈>이나 <폭포>에서도 유사한 주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시인이야말로 현실의 고난을 가장 예리하게 감응하는 능력을 지녔다. 김수영 시인은 힘겨운 시대의 고난과 위기를 일종의 시라는 부호(상징)을 통해 그가 잃어버린, 시대가 던져버린 순수와 인간성회복에 대한 열망을 절규와 저항의 형식으로 표출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시에서 독재나 민중의 저항 같은 이념적 군더더기를 떼어내면 오히려 순수 본연의 시정신이 드러난다. 언제부터인가 강단과 평단에는 지적 엘리트로 자처하는 소수의 평자 그룹이 이를 주도했다. 독재 권력과 민중이라는 계층구조로 접근하면서 이념성향의 해석을 부추겼다. 하지만 학교 교육을 받는 젊은이 들은 보다 자유분방한 개성이 존중되어야할 미래의 꿈나무들이다. 그들에게 자칫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줄 위험마저 상존하는 것이다. 보다 다양한 해석의 예시를 통해 그들이 공감하는 세상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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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유치환의 <바위>를 소개한다. 바위는 절연체다. 외부로부터의 자발적 단절은

잡다한 현상계의 유혹과 혼란을 차단한다. 그리고 내면에의 몰입은 자아의 각성을 위한 처연한 

구도의 정신과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다.(청사)  

  


이 한 편의 시////////////////////


바위-유치환


바위 / 유치환(柳致環)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忘却)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출전; <삼천리> (19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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