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시집- 위대한 숲
[화제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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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시인 4인의 공동시집이 나왔다. 기존 동인지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형식의 시집인 것이 특이하다. 동인지 하면 젊음의 패기와 분방한 열정을 떠 울린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이제 생의 고락(苦樂)을 견디고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여울목의 연어처럼, 그렇게 모였다. 오늘의 우리 문단풍토에서 흔치않은 일이다.
조병기 허형만 정순영 시인은 평생 대학교단에서 헌신했다. 가르치고 북돋우고 길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임병호 시인은 언론에 종사하면서 비슷한 역할을 했다. 그들의 의기투합은 창작을 매개로 오랜 교류와 동통(同痛)의 교감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개개인이 나무 그 자체로 업적을 평가받는 위치에 있지만 굳이 숲이 되고자 했을까? <위대한 숲> 시집제목에서 그 의도가 드러난다. 4인 4색,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 전체는 숲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숲은 힘이 있다. 어울림의 힘이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강함이 아니라 내면의 관조(觀照)에서 나오는 힘이다.
젊음의 시학은 외부의 바람이다. 때문에 공간적 확장과 파쟁(派爭)이 필연이다. 하지만 연륜의 시학은 들뜸을 극복한 가라앉음의 청정(淸淨)이다. 잡다한 언변이나 꾸밈의 요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요한 내면의 바다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울림의 깊이로 말한다.
시집에 수록된 각 20편 가운데 대표성 있는 1편씩을 분석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조병기 시인은 시조의 음율과 자유시의 호흡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시인이다.
시 시조 두 형식의 장점을 접목했을 때 시 이상의 시가 가능해진다. 두 장르가 서로 상승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시 <바람에게>는 지나온 것에 대한 무상과 깨우침의 지혜가 드러난다.
시조의 음률은 뚜렷하지 않지만 내면화되어 잠재되어 있다. 그래서 시의 어조가 차분한 관조의 분위기를 내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성찰의 시다.
키워드인 ‘바람’은 ‘지난여름’을 쓸기도 하고 ‘풀잎’을 잠재운다. 무성한 ‘말의 숲’을 관통하기도 한다. 그의 역할로 보아 열정의 청년기를 거쳐 성찰의 시기를 맞는 시간의 변화 혹은 삶의 무상을 은유한다. 시간은 만병을 치유하는 명약이다.
시간은 그리도 부산했던 지난여름(청년기)을 쓸어내고 힘겨운 일도 그렇게 ‘쉽게’ 해치우는 냉혹의 해결사인 것이다. <죽는 일 만큼이나 쉽게 풀잎도 재우고>에서 죽음의 역설을 깨우쳐준다. ‘무성한 말의 숲’은 청년기 공간 확장의 분방한 에너지다.
‘빈 뜰’은 그런 ‘무성함’을 지나온 각성과 성찰의 자리인 것이다.
허형만 시인은 동심과 순수, 달관의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잎을 떨구어 버린 가지처럼 홀가분하고 가뿐하다. 집착을 여읜 가을하늘 이다.
시 <위대한 숲>은 숲을 바라보는 찬탄과 겸손을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우러러보는 대상의 부재 현실을 꼬집는 아이러니도 보인다.
우선 ‘훌륭하시다’ ‘대단하시다’의 상대존중 어투가 이채롭다. 대상인 ‘숲‘을 자연 이상의 인격적 존재로, 그것도 우러러봄(존경)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먼저 이유를 제시하고 결론을 맺는 귀납적 구조로 돼 있다. 그런 연쇄를 통해 점층적 기법으로 의미를 강화하는 것이다.
첫 연에서 잎을 떨구어버린 ‘빈 가지’의 여백미를 찬탄한다. 집착이 없는 무소유의 정신에 대한 흠모가 ‘훌륭하시다’로 귀결된다.
둘째 연에서는 봄 여름의 왕성한 생명력을, 결미에서는 그 위대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지상의 하늘을 하나로/ 번지고 스미고. 스미고 번지게 하시니.>에서 그 의미의 확장성은 최고조가 된다.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고 하나이면서 여럿인 우주의 섭리에 대한 깨침의 지혜가 드러난다. ‘숲’의 생명성 창조성 영원성을 통해 삶의
무상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임병호 시인은 식지 않는 열정과 순수의 시인이다. 흔히 ‘광교산 시인‘으로 불리울 만큼 생의 근원인 향토를 사랑하고 북돋우는 정신이 남다르다. 문예지 [한국시학]을 통해 후진을 발굴하고 양성하며 언론인의 소명을 다해온 소신과 의지는 귀감이 되고 있다.
공간배경인 ‘보통리’는 어디쯤일까? 화자의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가상의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 그곳은 자연과 화자가 일체를 이루는 이상향이다. 그래서 자연은 화자와의 거리가 없다. 텅 빈 들판에서도 ‘소리‘가 들리고 나무들의 수런거리는 소리, 보리밭에서 생명이 피어나는, 그런 은밀한 소리까지 들린다.
소리는 깊은 내면에서 울려오는 자성(磁性)의 소리다. 본성에서 들려오는 순수와 선의지(善意志)의 감응인 것이다.
바람은 “가슴 펴고 살아라“ ‘모두를 사랑하라” 속삭이고 산들이 ’어깨를 두드리는’ 그런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공간이 현실에는 없다. 하지만 시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은밀한 속삭임을, 시를 통해서라도 전해들을 수 있는 독자는 행복하다.
사랑과 신뢰, 진정한 용기의 영웅이 부재하는 현실에 대한 뼈아픈 질책이기도 하다.
정순영 시인은 ‘내려놓음에 대한 가벼움‘을 지향하는 순수서정의 시인이다. 몸에 벤 존중과 겸손의 덕목을 실천하면서 스스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이성의, 불의에 눈 감지 않는 소신파 시인이다.
이 시의 언어는 간결하고 정화된 것이다. 더 이상의 언어는 사족(蛇足)이 될 것이다. 시의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알몸’ ‘죄’ ‘나목’ ‘별빛’은 크리스천을 상징하는 시어들이다. 정 시인은 근자에 그의 믿음의 원천인 기독교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시를 자주 보여준다.
지금까지 천착해온 순수서정에 정신적 깊이를 더하는 변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된다. ‘알몸’은 내려놓음의 종착지다. 살면서 삶의 무상을 거듭 사무치게 깨달은 결과일 것이다. <어느새 내가/ 죄를 깨달은 나무가 되어>에서 지난날의 참회를, <파란 하늘빛에 씻은 나목(裸木)으로/ 성령의 세마포를 입고>에서 속죄양의식을 읽을 수 있다. 신과 인간 참회와 구원, 오염의 현실(지상)과
은혜의 별빛(천상)의 대립적 이원구조의 극복을 통해 거듭 태어남의 궁극을 실현하고자 한다.
가을날 시의 타작마당은 풍성하다. 저 마다의 빛깔로 개성의 향기를 전해준다.
4인 4색이라 주제도 관접도 다르다. 읽는 독자에게 다양하고 풍부한 시의 묘미를
전해줄 것이다. 특히 연륜의 시가 보여주는 삶의 성찰과 각성은 오늘을 사는 독자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이 되고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시인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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