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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Nov 23. 2021

나의 하나님-김춘수


월간 [문학공간] 21. 10월호 원고


시가 있는 산문 6 / 나의 하나님(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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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김춘수 시인, 그는 한국시문학사에 주지적 경향의 시를 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얕은 감성의 시를 

거부한다. 독자에게 잘 읽히는 시, 안일한 시 쓰기에 대한 반발 인 것이다. 그의 시는 철저하게 고민하고 

성찰한 결과물이다. 내면의 성찰을 통해 본질에 대한 탐구를 끈질기게 이어간다. 존재와 근원에 대한 

탐색이다.

신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근원적 물음인 것이다.

<김춘수는 많은 기독교적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이를 신앙시 관점에서 바라볼 수는 없다. 이미 그의 다른 

작품해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의 이력을 참조해 볼 때, 기독교 신앙을 유지한 바가 없고 단지 예수에 관한 

연민과 추종에 근거하여 작품을 생산했기 때문이다.>-한 종교신문에서

위의 글을 쓴 문학평론가의 말대로 김춘수의 ‘하나님‘은 굳이 기독교 신앙의 대상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인 개념의 ’신 혹은 절대자’의 개념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의 시는 종교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종교시가 그렇듯, 시가 종교의 틀 속에 갇혀버린 때문에 시는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시가 아닌 고백록이 되고 시의 당당한 자유와 혁명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김춘수의 ‘하나님‘은 다르다. 시인 이전의 김춘수가 지닌 근원적 질문의 대상인 것이다. 그런 그의 당돌하고 불손하기까지 한 하나님의 실체를 해부해 보기로 한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이다.

삼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이다.

연둣빛 바람이다.


-김춘수 <나의 하나님> 전문


출전; <김춘수 전집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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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 김춘수 (1922-2004)


경남 통영 출생 경기고 졸업, 니혼(日本)대학 창작과 중퇴

경북대ㆍ영남대 교수, 예술원 회원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 발간

1969년 시집 <타령조 기타> 발간 전후로 ‘무의미시’ 지향

시집 <늪>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등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학상, 은관문화훈장 등 수상


이중적 구조, 대상을 통한 존재의 본질 탐구

시와 종교, 종속 아닌 존중일 때 자유와 혁명 가능


우선 이 시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런데 그를 비유하는 어휘들이 상당히

거칠다. 과격하고 당혹스럽기까지 한 래디컬 이미지(radical Image)가 나열돼

있다.

원관념(하나님)=보조관념(다중 비유)의 단순한 형식이다. 그런데 대상에

어울리지 않는 어휘들, ‘푸줏간의 살점‘ ’슬라브 여자‘ ’죽일 수도 없는‘과 같은

불순한 표현이 충격을 준다. 만약 시인이 종교의 내부자라면 이런 표현이

가능했을까?

이런 울분과 공격적 언사가 가능한 것은 대상을 상대적 관계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신양의 대상으로 보다 울분과 성토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 시는 다중은유를 통해 대상에 대한 존재의 실체를 밝히고 있다.

병렬적으로 제시된 비유는 대상(하나님)을 ‘늙은 비애’ ‘살점’ ‘놋쇠항아리’ ‘순결’

‘연두빛 바람’으로 은유한다. 이 시의 구조를 보면 ‘당신은 또’ 행을 기준으로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대상에 대한 원망, 부정적 이미지인데 비해

후반부는 대조적인 긍정의 이미지로 짜여있다. ‘늙은 비애‘는 대상을

현상(시간적)으로 파악하고 ’살점‘은 구체적 사물로 파악했다.

‘놋쇠항아리’(무거움 불변) ‘죽지도 않는’(불멸)을 통해 역설적으로 무명(無明)의

덧없음과 무상함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은 원망 자조를 넘어선

역설적 대전환의 계기가 된다.

후반부는 부정을 넘어선 긍정의 이미지가 제시된다. ‘대낮에도 옷을 벗는

어리디어린 순결‘은 통속(通俗) 이전의 ’순수‘를,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둣빛 바람‘은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암시한다. 삶의 고뇌와 존재의 참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시가 종교라는 틀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면서도 종교의 영역을

존중한다. 결국 이 시의 래디컬 이미지는 자아각성과 존재의 실체를 밝히는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김춘수 시는 오늘의 시가 달콤한 서정의 유혹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것을 경계한다. 지적 탐구와 근원에 대한 물음을 통해 시의

영역을 확대한다. 동시에 독자의 이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철학적 탐구정신이 시의 품격을 높이고 독자의 관삼을 끄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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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편의 시]

                                

                                         

대결 ― 이상국


큰눈 온 날 아침

부러져 나간 소나무들 보면 눈부시다


그들은 밤새 뭔가와 맞서다가

무참하게 꺾였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바치기 위하여

공손하게 몸을 내맡겼던 게 아닐까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의 무게를 받으며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빛나는 자해

혹은 아름다운 마감

나도 때로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

-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에서


이상국 시인=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心象'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내일로 가는 소' '우리는 읍으로 간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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