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원 권두 칼럼
문예21 / 新刊 산책
[詩苑]한국시문학 전문계간지
[권두칼럼] 발표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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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현실, 詩와 정치의 거리
계간지 [詩苑]21.가을호 E-mail/ ksbpoet@daum.net
문학과 현실은 어떤 관계인가? 혹은 시와 정치는 어떤 관계인가?
이 문제는 오래된 관심사이자 논쟁거리이기도 했다. 우리의 문학은, 혹은 시는 현실로서의 정치권력과 어떤 관계인가?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식에 시인을 초대하여 축시(祝詩)를 읽는 경우가 낯설지 않은 전통이 되었다.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이벤트성 행사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매우 강한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는 젊은 무명의 여성시인이 연단에 올라와 이를 지켜보는 세계의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것도 22세 흑인 여성의 시가 놀라움을 넘어 감동을 주었다.
아만다 고먼, 아직 시도 세상 물정도 잘 모르는, 애송이 시인의 등장은 매우 광범위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내었다.
이전 트럼프 정권이 마구 흔들어놓은 과오를 바로 잡겠다는 바이든의 강한 결읙와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다.
분열과 혼란, 인종차별, 빈부와 계층 간의 갈등은 미국사회의 고질병이 되었다. 무엇보다 미국의 전통과 위상의 추락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문명에서 원시에로의 무한추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과 닮은꼴이어서 남의 일 같지 않다.
고먼의 축시낭송을 지켜보던 뉴욕타임즈의 한 서평가(Dwight Garner)가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를 던졌다. “권력이 부패하면 시는 깨끗해진다.”고,
“권력이 사람을 교만하게 할 때, 시는 그의 한계를 일깨워 준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영역을 좁힐 때, 시는 인간존재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일깨워 준다,”며 그의 소회를 밝혔다. 그의 의미부여는 시와 정치가 어떤 관계 인지를 암시해준다.
이보다 앞서 미국의 제 35대 존 F케네디 대통령(재임 1961-63) 취임식에는 ‘가지 않은 길’의 시로 유명한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1874년~1963년) 시인이 축시를 읽었다.
당시엔 처음 있는 일로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뉴 프런티어 정신을 앞세우던 젊은 케네디는 노시인을 통해 어떤 상징의미를 던지려 했을까?
얼마 후(63.1) 프로스트 시인이 89세로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는 도서관 건립 기공식에 참석한 케네디 대통령, 그의 기념비적인 연설을 통해 취임식에 시인을 초대한 상징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운명의 각본은 냉혹한 것인가? 이 연설을 마친지 불과 얼마 뒤, 케네디는 반대파의 총격에 스러지고 그의 꿈은 영구 미완(未完)의 이상으로 남았다.
< --그의 바탕에는 인간 정신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와 권력을 결합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권력을 권력으로부터 구원하는 수단이 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으로 몰고 갈 때, 시는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줍니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 영역을 좁힐 때, 시는 인간 존재의 풍요와 다양성을 일깨워줍니다. 권력이 부패할 때, 시는 정화해줍니다.> -연설문에서
젊은 케네디가 추구하는 이상의 정치에 시의 순수를 결합하고자 했다.
시와 정치는 다 같이 사회발전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정치는 사람을 이끌지만 쉽게 탐욕에 물든다. 권력은 더 많은 권력을 추구하면서 스스로 타락의 길에 빠져든다. 이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시의 순수에 기대는 길 뿐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근원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다. 권력의 힘은 술수와 폭력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시의 순수의 힘은 인간을 가장 인간적인,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문학과 현실, 혹은 시와 정치는 상보(相補)관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정치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따끔한 충고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정치가, 권력이 겸손하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정해진다. 자칫 힘자랑을 하게 되면 서로 대립관계로 치닫게 된다. 문학이 풍자나 비평을 통해 경고를 하면 불온한 권력은 힘으로 응징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역사는 과오의 늪으로 뼈져든다.
우리의 저 빗나간 혁명의 역사, 군부독재와 신군부 세력의 위압과 폭력에 맞서던 의로운 문학이 필화사건으로 윤색되고 수난을 겪는 아픈 경험을 충분히 했다.
그런 교훈을 사람들은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정치권력은 교묘하게 암묵적으로, 문학을 탄압하고 자신의 편에 예속시키려 회유하기도 한다.
문민정권에 와서도 덜 성숙한 사회일수록 민주를 가장한 권위주의와 오만한 독선을 멈추지 않는다.
문학은 급변하는 시대의 변곡점에서 정치권력과 팽팽한 긴장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인 정의와 신념이 훼손되면 법치(法治)의 둑이 허물어지고 만다. 양심과 인간성이 매몰되는 폭력 앞에서, 문학은 더 아픈 상처를 받는다.
이를 눈 감는 사이비 지성, 자존(自尊)과 이성이 마비된 맹목적인 충성과 우상화, 분열과 혼란을 부추기는 극단적 패거리 정치는 문학을 절망의 암울에로 몰아넣는다. 이 뿐인가?
말려야할 문학이 이념을 앞세워 스스로 권력의 편에 서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목도(目睹)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변고(變故)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뒷짐지고 침묵으로 눈을 감는 쪽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적 이념을 공유하는 문학 단체가 특정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해 지지 반대성명을 내는 등의 행위는 소명(召命)을 망각한 비윤리적인 마조키즘(masochism,자기학대)이 아닐 수 없다.
문인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은 순수성을 지키려 하겠지만 결국 혼탁한 정치의 유혹에 동화되어 ‘그 밥에 그 나물‘이 되는 경우를 본다. 무엇이 본질인가에 대한 분명한 신념 없이 권력의 달콤함에 안주한 결과이다.
권력은 잠깐이지만 문학은 영원하다.
인간구원을 지향하는 문학 장르인 시는 정치에 대해 늘 민감했다. 이로 인해 때로는 협력자로, 비판과 풍자로 저항의 목소리로 역사의 함수관계를 유지해왔다. 순수냐 참여냐의 해묵은 논쟁은 이제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시인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동시대인으로서, 양심과 본분에 얼마나 충실하려 하였는지는, 훗날의 문단사가 증언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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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1960)천료로 등단
시집으로 <오지행> <산조> <혼자 부르는 노래>외 16권
월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한국문화예술상 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예총 부회장
현재 문학시대 주간, 문학의 집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