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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Mar 20. 2022

나의 삶 나의 문학 특집(하)

-자유 열린세계로의 탐험


한국시학 22봄호 특집



한국시학 22봄호 특집//


나의 삶 나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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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의 삶-자유, 열린 세계로의 탐험(하)


-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앞에서 계속)

두 번째 나의 창작극 ‘狂人과 옥황’’도 무대에 올려졌다, 세상에서 바보로 치부되던 주인공(狂人)이 수행의 힘으로 삼매를 얻고 신족통이 열려 직접 천궁에 가서 신(옥황)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다소 엉뚱하면서 코믹하게 전개되는, 신과 인간의 본질을 캐는 작품. 역시 시문학지에 2회 희곡이 분재되었고 이길재의 전용 하나소극장에서 오랜 기간 동안 공연 되었다.


나의 작품이 공연 중일 때 가끔 소극장에 들리면 연습에 집중하는 친구 이길재와 젊은 배우들의 구슬땀이 열정의 혼으로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이 밖에도 시조의 현대화에 줄곧 관심을 기울였다. 이미 등단 작품에서 보인 열린 시의 감성을 시조라는 형식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과제였다. 그래서 ‘연행시조‘에 대한 실험의 일환으로 연행시조를 지어 발표도 하고 <그 새로운 형식모색의 당위성>(월간문학 06.7)을 발표하면서 형식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80년대 후반에서 혹독한 시련기에 시작된 나의 문학적 휴면기는 10년이 지나면서

다시 문학을 향한 향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필명을 기청(氣淸)으로 바꾸고 자유시를 중심축으로 발표활동을 재개했다.

낡고 허물어진 것들과의 결별인 것이다. 새로운 필명은 순우리말로 하면 ‘맑은 기운’이다. 평소에 좋아하는, 저 신라의 지조 높은 화랑 기파랑을 찬탄한 향가 <찬기파랑가>의 이미지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 고전문학에 대한 이해와 현대적 재해석에도 관심을 가졌다.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부전공으로 접하면서 우리 시의 뿌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월간 <문학공간>지에 ‘신고전기행-현대시로 풀다‘(08-11-09. 10월호) 연재를 통해 <구지가> <공무도하가>등 고대시가, <헌화가> <도솔가> <찬기파랑가>등 신라의 향가, 고려가요에 이르는 불멸의 명작에 대해 12회에 걸쳐 원문해석과 함께 현대정서로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다.


비평 활동도 재개했다. 오늘의 비평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소수의 전문가 그룹이 흐름을 주도하고 마치 특권계급 인양 군림했다. 그들의 편협한 시선이 미치는 범위의 소수의 문인들만 혜택을 누리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지나치게 난해하다. 시를 해석하고 독자에게 바른 길을 제시해야할 본분보다 현란하고 난해한 지적 유희로 빠져들기도 했다. 그래서 비평과 시의 거리를 더가깝게 해주는 누군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비평은 가급적 평이한 시론수준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독자에게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전개하려 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집평설도 여러 편 썼다. 정순영 시집 <사랑>의 ‘그리움 혹은 사랑의 변증법’(문학공간 15. 6월호) 원로시인 4인(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 공동시집 <위대한 숲>의 ‘觀照와 울림의 시편들’ 강정실(문협미주지회장) 평론가의 시집 <개썰매>의 ‘시와 영상, 멀티언어예술의 美學’ 최근의 김창식 시집 <목판본 일기장>의 ‘낯설게 말하기, 思惟와 의미론의 시학’ 등 10여 펀에 이른다.


현재 <문학공간>지에 유명시인의 시 한편씩을 집중 조명하는 ‘시가 있는 산문’을 매월 연재하고 있다.

2000년대 초에 그동안 발표작과 신작을 모아 자유시집 <안개마을 입구>를 펴내고

각 문예지를 중심으로 문화칼럼을 발표하는 등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외부활동을 자제하는 대신 주로 인터넷 블로그와 SNS를 통한 공감과 소통에 주력했다. <시인과 문예통신> 시사 문예저널을 통해 실시간 신작시와 칼럼을 발표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국내 주요문인 예술인 문화예술기관 대학 주요언론과 해외문인 등 국내외 다양한 수신인에게 실시간으로 신작을 전하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신통의 혁신이었다.


특히 박 정권 말기 촛불 시민혁명을 기점으로 탄생한 문 정권이 촛불의 기대와 다르게 분열과 일탈의 자기모순에 빠지는 현실을 목도했다. 정권보호를 위해 노골적인 검찰박해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정치 사회 이슈칼럼과 현실참여 시, 풍자시를 발표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또 겉돌고 있는 한국 문화예술기관의 정책과 지원상의 문제점을 현장 예술인으로 직접 경험하고 부딪힌 체험을 토대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살아있는 양심과 이 시대를 사는 문인으로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려한 것이다. 네이버 블로그 홈>검색창<시인과 문예통신>이나 브런치(니르바나) 구글검색>기청시인으로 접속하면 그동안의 생생한 시사칼럼 참여시 풍자시와 다양한 문예활동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남은 과제/

정화와 영성으로 가는 旅程


영성에 대한 탐구는 고대 이래 수많은 종교와 이를 실천하는 수행자 그룹에의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동양에서는 비밀리에 전승(傳承)되고 대중에게 멀어졌다.

이에 비해 서양의 영성가들은 깨달음의 본질을 보다 명료하게 알려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우리시대의 뛰어난 선지식(賢者)으로 얼마 전에 타계한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 티벳 출신 달라이라마(본명 텐진 가쵸)를 비롯해 서양의 대표적 영성가인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 1948 독일 출생)와 데이버드 호킨스, 루이스 보르헤스(남미출신 시인 작가)등은 쉬운 현대어로 속삭이듯 말한다.


톨레는 ‘지금 이 순간’을 강조한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 속에서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런던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스물아홉의 어느날 회의와 절망의 나락에서 기적 같은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나는 더 이상 고통스런 나와 함께 살수 없어” 하다가 문득 ‘그럼 나는 둘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하나는 가짜이고 하나는 참나란 말인가?“ 절망의 나락에서 갑자기 밝음으로 솟아오르는 깨달음의 자유를 체험한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현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은 몸과 마음의 집합으로, 생각이 나를 지배하면서 진정한 나는 가려지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인연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현상으로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의식은 언제나 깨어있다.

이런 깨어있는 의식, 순수의식이 진정한 나이고 주인인 것이다. 그것은 불교적으로는 불성, 기독교에서는 성령, 인도의 브라만교에서는 브라흐마로 칭한다


내가 영성을 알지 못했을 때 나의 삶은 맹목적이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황했다. 길을 잃어버린 여행자처럼 외롭고 허전했다. 무엇을 해도 만족은 없었다. 때로는 니힐(니힐리즘)의 위험한 연못가를 서성거리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젊은 날의 열정과 방황, 삶의 위기에서 절망의 바닥을 보게 한 것도 나를 정화의 길로 이끌기 위한 과정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혹독한 겨울날, 양평의 한 선원에서 집중수행을 하면서 너른 법당을 혼자 청소하고 돌로 새긴 불상을 닦으면서 붓다의 오묘한 미소를 읽었다. 매일 오체투지를 하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가야할 길이 진리와 영성을 만나는 저 언덕, 니르바나임을 어렴풋이 느낀다.


지금까지 나의 삶은 오프로드, 길이 없는 길이었다. 내가 운명적으로 선택한 길이다.

길을 가면서 꽃의 향기와 열매의 달콤함에 취하기도 했다. 독수리가 맴도는 아득한 벼랑 끝에 바람과 햇빛의 세례를 받으며 삭아가는 풍장(風葬)의 무상을 보기도 했다.

나의 문학은 이 길의 동반자로, 자유와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탐구자로 함께 했다.

시와 시조의 운율을 기반으로 필요에 따라 에세이와 드라마 혹은 날카로운 칼럼 문예비평으로 확장하며 불의에 항거했다.


이제 멈추고 내려놓고 본업인 시로 통합하면서 마음의 정화를 통해 영성에 가까워지는 탐구를 이어갈 것이다.

“물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법구경의 한 구절이다. “자신을 섬으로 의지하고 다르마(법)를 섬으로 의지하라” (自燈明 法燈明) 붓다가 남긴 최후의 당부이다.

나의 시업(詩業)은 당분간 그 길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마음을 정화하고 맑은 시의 언어를 통해 한줌 작은 빛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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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학 22 봄호 특집 //                                                                                           



자선시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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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청 시인



1


그래도 올 것은 온다




지는 해 타는 노을 모두 태우고 간다


우수수 낙엽 지던 가을도 태우고 가고


불끈 치솟던 객기,


오만과 열정까지




거만하게 나부끼던 깃발도 빛바래고


떠돌던 공허한 약속 널브러진 주검들


그래도 올 것은 온다


썩은 낙엽더미 위에서




나부끼고 흩어지던 공허한 주검들 위에서


거리에 낭자하던 진혼(鎭魂)의 통곡을 넘어




한 가닥 빛 무리 거느리고


이 아침 올 것은 온다.




2


뽕잎과 누에




내 몸은 뽕잎이다


오뉴월 초록의 바다


물결 철썩이는 외딴 포구에


파란 하늘을 안고




오직 하나의 그리움


뼈가 으스러지는 사랑


꿈꾸며 홀로 피워 올리는


시간의 올올 씨줄과 날줄


엮어 짜내는 뽕잎이다




누에여, 먹기만 하면


나는 줄줄 풀려나는


명주실이 될 것이다




그대로 시가 될 것이다


노래가 될 것이다


천년을 잠재우는 마법(魔法)의


향기가 될 것이다




그대의 텅 빈 가슴


눈멀고 귀먹게 하는


독(毒)이 될 것이다




푸른 영혼 일깨우는


별이 될 것이다


누에여.




3


귀향(歸鄕)




나 이제 돌아가리


잊고 온 고향


바람도 꽃도 오지 않는


천년 억겁의 시간도 잠재울


깊고 푸른 적멸(寂滅)




소나기의 열정에서 별리別離의 낙엽까지


만개한 꽃가지에서 내밀內密한 뿌리까지


그대 보는가 꽃송이 속 까만 눈(眼)


혹한의 눈 속 웅크린 생명의 불


끝없는 윤회(輪回)의 사슬 벗고




거친 욕망의 바다


잠들지 않는 파도 다독여


비상 비비상천(非想 非非想天) 그물 벗어나




아, 지금 여기 그리운 고향


대 자유의


고향으로 가리.




4


보이지 않는 손




누구란 말인가


어제 진, 해를 다시 돌리고


낮 동안 텅 빈 하늘 천정에


밤이면 보석을 뿌려


총총 별빛 빛나게 하는가




누구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가볍게 흔들리다가 어느 새 거친 숨소리


먹구름 몰고 와서 목 타는


대지에 비를 뿌리는가




아득한 천 길 낭떠러지


내 영혼 울부짖을 때


번개처럼 내리 꽂히는 폭포줄기


푸른 밧줄을 매어주고




막히고 끊어져서


한 발짝 물러설 수도 없을 때


소리 없이 다가와 안아주는


도대체 누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인가.




5


눈 위에 한 방울




밤새 누가 소리 없이


하얀 도화지 한 장 펼쳐놓으셨다


이 놀라운 변혁(變革)


밤새 쌓인 폭설에 뚝뚝 부러진 나뭇가지


객혈(喀血)의 유언장을 지우듯


할 수만 있다면




이 땅에 와서 우리


그토록 토해낸 오욕(汚辱)의 찌꺼기


새하얀 눈으로도 다 덮을 수 없어


한없이 너그럽고 크신 이여




이 앓아누운 절명(絶命)의 대지,


깊은 잠 깨우는 생명의 봄바람 되어




참회의 한 방울


부끄럼의 눈물 흘려도 좋을지


내게 아직 남은 용기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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