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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Apr 19. 2022

꿀과 칼, 백목련만 빈집을 지키고


시로 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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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 여는 세상] //////////////



사월의 노래-시인 곽재구

사월의 노래-시인 곽

사월이면

등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며

첼로 음악을 듣는다


바람은

마음의 골짜기

골짜기를 들쑤시고


구름은 하늘의

큰 꽃잎 하나로

마음의 불을 가만히 덮어주네


노래하는 새여

너의 노래가 끝난 뒤에

내 사랑의 노래를

다시 한 번 불러다오


새로 돋은 나뭇잎마다

반짝이는 연둣빛 햇살처럼

찬란하고 서러운

그 노래를 불러다오.



* 출전; 시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열림원)



 곽재구 시인 약력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

▲시집 ‘사평역에서’ ‘전장포 아리랑’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동화집 ‘아기 참새 찌꾸’ ‘낙타풀의 사랑’

▲신동엽 창작기금, 동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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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 부는 숲의 요정과 새

[신간 리뷰]


기청 시인의 산문집 <<불멸의 새>>


책속으로>>


뉴노멀 시대의 문학



문학예술의 치유기능, 희망의 妙藥


봄이다. 멀게 만 느껴지던 봄이 거짓말처럼 우리 앞에 다가왔다. 봄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당신의 마음에도 꽃을 피우고 싶어요” 고맙구나 그리고 부끄럽구나

아직 겨울의 눈 속에 웅크린 우리 마음이 부끄럽구나. 계절의 봄을 기다리면서

내 마음의 봄을 잊었구나.


그리스 신화에는 시간을 관장하는 시간의 신(神)이 둘이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그것이다. 전자는 물리적인 시간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이다. 후자는 특정의 의미가 부여된 시간이다. 

주관적이며 의지적인 기회의 시간이다.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문학적 시간도 카이로스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하략)“ -최승자 시인의 <시간이 사각사각>에서


이 시는 주관적 문학적 시간의 속성을 청각과 시각의 공감각적 심상으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순간순간 변하고 사라지는 생멸(生滅)의 시간에서 역사나 영원과 같은 불멸(不滅)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문학의 시간은 순간에서 영원을 꿈꾸는 마술의 시간이다. 이런 마법이 가능한 것은 문학의 상상력과 영감(靈感)의 발현으로 창작되는 예술적 창조의 힘 때문이다.


금세기에 COVID-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인류는 나약한 문명의 굴복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변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수정하지 않으면 지구문명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과학을 내세운 물질문명은 한계에 부딪쳤다. 인본 예술존중의 시대로,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자연 생태존중의 사고로, 개발만능의 사고에서 환경 생명존중의 사고로 전환이 


시급하다. 포스트 COVID-19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표준인 뉴 노멀(New Normal)의 정립도 서둘러야한다. 사회경제 분야의 특성은 탈세계화의 가속화, 디지털 전환의 촉진, 소비행태의 변화, 언택트(비대면)문화의 확산 등이다.


순수 창작예술 지원책, 貧困의 악순환


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분야, 특히 문학예술의 역할도 강조되어야 마땅하다.

문학은 치유를 돕는 묘약이다. 감정 정화기능은 상처 입은 마음을 위무해준다.

물질문명은 크로노스에 기대지만, 문학예술은 카이로스의 창조적 능력에 비중을 둔다. 흔히 문학은 변화를 싫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문학이야말로 인간의 정서 감정을 질료(質料)로 하는 창작예술인 만큼 변화의 선봉에 서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수 창작예술을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도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

한국의 문예 진흥정책을 한마디로 “문화는 넘치는데 예술은 빈곤하다“고 말한다.

이런 저런 문화 쪽의, 예를 들면 공연 전시 행사와 같은 일자리 중심의 지원은 풍성한데 비해 상대적으로 정작 순수창작예술 쪽의 지원은 빈곤하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매년 공모하는 ‘창작기금 공모사업’은 복권당첨 만큼이나 어렵다고들 말한다. 공모사업의 생명인 공정성의 확보는 외부적 요소는 다소 개선이 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조직 내부의 공정성은 담보할 길이 없다.

그나마 선정인원은 얼마 되지 않아 대다수 문학 예술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문제는 예산확보의 한계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또 제한적인 공모사업보다 창작 예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업정책의 개발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담배기금이나 복권기금에서 얼마를 배정 받았지만, 이마저 바닥이 보인다고 한다. 순수 창작예술을 비중 있게 지원하기 위해서는 문체부에서 창작예술지원청으로 독립시켜야 한다. 창작예술과 대중문화는 여러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분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래서 정책 예산 조직의 독자성과 함께 보다 큰 그림의 지원책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속 한국 예술의 위상을, 그 유장한 뿌리와 한국스러움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뉴 노멀 시대의 문학은 오랜 팬데믹으로방향성을 상실한 일반인 독자를 위무(慰撫)하고 새로운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 


  (월간 문학공간 21. 2월호 권두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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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길 문학의 희망 (본문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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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




-시인은 현실의 나뭇가지에서 이상을 노래하는 새


 나뭇가지에 앉은 새는 하늘을 우러러며 노래한다. 지상을 굽어보며 아픔을 토해낸다.


-불멸(不滅)의 새는 영원을 노래한다. 별에 가 닿고자 한다. 별은 여기가 아닌 저기, 희망과 이상을 노래하는 지향의 세계다.


-나에게 있어서 문학의 뿌리는 시(詩)다. 산문은 시의 원석(原石)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그 자체의 독자성과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산문은 때로 마음나무의 둥치가 되고 가지가 되고 나뭇잎이 되어 비로소 그의 존재를 완성한다.


-이 산문집은 나의 삶과 문학, 생애를 집약하는 단 한 권의 문집


동안 문예지에 발표한 것, 블로그에 올린 것, 그리고 신작 중에서 고른 것이다.


-이 지상의 숲들은 어머니처럼 새들을 품어준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젖지 않게, 거친 바람의 폭력에 꺾이지 않게, 깊은 한밤에도 잠들지 않고 새들을 품어준다.


그런 순절(純切)한 자비와 연민의 보살이 바로 이 땅의 문학을 사랑하는 그대가 아닌가?   (불멸의 새-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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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청 시인           기산문집 불멸의 새/ 칼라판 304쪽 현대시문학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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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와 저자 약력, 목차와 머리말 책값 책속으로는 <미리보기>를 클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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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의 삶은 오프로드, 길이 없는 길이었다. 내가 운명적으로 선택한 길이다. 길을 가면서 꽃의 향기와 열매의 달콤함에 취하기도 했다. 독수리가 맴도는 아득한 벼랑 끝에 바람과 햇빛의 세례를 받으며 삭아가는 풍장(風葬)의 무상을 보기도 했다.


나의 문학은 이 길의 동반자로, 자유와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탐구자로 함께 했다.

시와 시조의 운율을 기반으로 필요에 따라 에세이와 드라마 혹은 날카로운 칼럼 문예비평으로 확장하며 불의에 항거했다.

이제 멈추고 내려놓고 본업인 시로 통합하면서 마음의 정화를 통해 영성에 가까워지는 탐구를 이어갈 것이다.


-정화와 영성으로가는 여정 (153쪽, 3부 시로 못다쓴 餘白)


(한국시학 22 봄호 특집/ 나의 삶 나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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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꿀과 칼, 백목련만 빈집을 지키고


주인이 떠난 삼성동 빈집에 백목련만 우두커니 빈집을 지키고 있겠다.

삼월 마지막 날, 입감 첫날은 종일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마마” “벼락 맞아 죽을

놈들“ 울분을 토해내던 지지자들도 모두 돌아가고 적막이 감도는 빈집엔,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 누군가의 눈길이라도 마주칠까 종일을 기다리겠다.


썰렁하고 낯선 독방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올림머리 두 자매도 이제 오지 않을 것이다 경호원도 운전기사도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무덤에라도 뛰어들듯 충성을 노래하던 그들도 더는 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한순간 멈추고 끝나버리는, 천길 벼랑 끝에 홀로 섰다.


공교롭게도, 세월호가 침몰 1080일 만에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목포 신항으로

돌아왔단다. 무슨 기이한 운명의 연(緣)이라도 있는 걸까? 누구는 떠나고 상처투성이의 배는 돌아왔다. 잘 각색된 사나리오처럼, 


그러나 양쪽 모두 말이 없다 한쪽은 생(生)이지만, 영어(囹圄)의 분리된 공간에, 다른 쪽은 이미 사(死)의, 들리지 않는 영원의 저쪽에 있다.

독과 꿀이 묻은, 권력이 쥐고 있는 양면의 칼은 날카롭다 그것은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착각 한다 그것은 언제나 녹슬지 않을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엄중한 민주의 이치(理致)다.


칼에 묻은 꿀은 달지만 자칫 그의 입술을 베일지 모른 심하면 몸을 베고, 목을 베고 그의 영혼까지 베어버린다. 자신도 모르게,

권력으로부터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라 황금으로 만든 금고로부터 가까이 있지 않음을 참으로 감사하게 여겨라.


봄비가 내려 새로운 생명을 피우겠다 작은 풀꽃 하나, 그 위대한 생명의 팡파레가 울려 퍼지겠다. 봄비는 낡은 것을 허물고 추한 것을 씻어 가 줄 것인가?

이 끝없고 부질없는 욕망의 땅에, 한 송이 시들지 않는 생명의 꽃, 영원의 꽃을 피워 즐 것인가? (*)


-꿀과 칼, 백목련만 빈집을 지키고 (23쪽 서정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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