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갈아엎는 달-시인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사월이 오면
산천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사월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에도
어느 머언 心底,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사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의 함성,
광화문서 목 터진 4월의 승리여.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의 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
59년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61 명성여고 국어교사 63 시집 '아사녀' 출간.
66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국립극장에서 상연
79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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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사월은 어떤가? 유독 우리 역사에 깊은 자국을 남긴 사월은
아직 진행행이다. 사월은 죽지 않았다. 사월은 어떤 함성 같은 울림으로
우리 가슴을 휘돌아 나온다.
신동엽 시인이 그토록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지만 아직 이 땅에는
허접한 ‘껍데기‘가 넘쳐난다.
지난 대선에서 민의로 불의(不義)를 갈아엎었지만 독초(毒草)는 여전히
살아 버젓이 지난날의 회귀를 꿈꾼다.
국회를 보라 저 민의의 탈을 쓴 꼭두각시의 야바위 놀음을 보라.
‘검수완박‘이란 위헌적 반민주적 날치기 입법을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시장 야바위꾼들의 속임수나 다름없는 기획 탈당, 기획 사보임으로
정족수 맞추기 게임을 즐기고 있다.
국가와 국민을 향해야 할 책무는 권력의 보호와 패당이기주의로
끝없는 대결과 꼼수로 동물적 야욕을 드러낸다.
사월이여, 대지의 따사로운 햇살과 자비로운 꽃들의 환한 웃음이 도리어
부끄럽고 민망하구나
사월의 넋이여. 눈과 얼음 뚫고 나온 사월의 바람이여.
(청사-글)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어디쯤 산골마을에는
산수유꽃이 노랗게 피어나고 있겠다.
이제 막 봄을 여는 산골, 넉넉한 가슴에 봄비가
내려 새싹들을 깨우고 있겠다.
꽃망울도 재촉해서 얼른 세상구경을 하라며, 눈을 뜨라며
보이지 않는 손이 연신 촉촉한 물기를 뿌려준다.
봄비와 더불어 신비감을 더해주는 것이 안개다.
안개는 여기와 저기를 이어주는, 하나로 묶어주는 마력을 지녔다
이 산과 저 산 이 마을과 저 마을, 모두 하나가 된다
신비의 커튼을 드리우고 너와 나도 하나가 된다
안개는 지울 것은 지우고 결국 하나가 된다.
거만하게 나부끼는 깃발도 성난 가시밭길도
너덜너덜 상처투성이의 가슴들까지도 지울 건 지우고
메울 건 메우고 북돋울 건 북돋우고 깔건 까 뭉개고
토닥토닥 할머니 손으로 어루만지는 봄비는 힐링이다
치유 해주고 다독여주는 축복이다
안개는 너와 나의 틈새를 메워주는 신비의 그물이다.
봄비는 혁명의 전사다 내 안에 파란 영혼의 불을 지피는 전령사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상흔(傷痕)을 따뚯하게 어루만지는 자비의 손길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마을에서 도시에서 때를 묻히며 살아간다
봄비가 오는 날,
비로소 묵은 때를 벗고 희망의 새싹을 튀운다 겨우내 앓던 관절염도
삐걱거리던 목발도 봄비가 오는 날이면 해방의 기쁨을 누린다
속박과 권태, 비굴과 나약함까지도 인내의 긴긴 터널 끝에서 만난
봄비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너와 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머나먼 바다 건너에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봄비는 다리가 되어
너와 나를 이어준다 그리고 밀어올린다. 미움과 사랑, 만남과
결별, 존재와 허무 사이의 텅 빈 공간을 메워주는,
봄비는 단단한 끈이다. (*)
(서정의 오솔길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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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얼음 뚫고 나온 바람처럼-
문단 45년 기념 산문집
산문으로 푸는 시인의 삶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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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길, 문학의 희망
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 이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이다 예술이 인류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열어준 역사적 사건이다. 먼저 미술(건축 조각)부문에서 시작되어 문학 음악 연극 등 예술전반으로 확산되었다 나중에는 예술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전반의 의식변화를 가져오는 혁신적 신문화운동으로 예술이 인류 역사에 공헌한 크나큰 감동의 시대로 남았다.
하지만 르네상스란 용어는 역설적으로 그리스 로마시대 문화의 부활,재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왜 그럴까? 진보가 아닌 퇴행이란 말인가? 그런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르네상스는 중세 신본주의에 반기를 드는 인간중심의 휴머니즘(humanism)이 원동력이 된 것이다.바로 그 점이 예술을 꽃피우고 인간을 인간다운 주체로 만들었다 속박(신이든 권력이든 물질이든)과 절망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의 가치를 실현 한다 그것은 바로 미(美)와선(善)의 질서가 융합된 완성의 세계다.
걸림 없는 자유, 인간성 회복의 구원(救援)이 르네상스의 본질이다. 한국예술의 르네상스는 언제인가? 그런 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토양이 성숙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문화예술은 독자적 생존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우선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 이로 인한 이념의 대립, 정치권력에 의한 과도한 간섭, 뿌리 깊은 사회 윤리적 인습. 물질주의에 짓눌린 소외와 패배의식, 이 모든 것은 예술을 비웃는 장애가 되었다 또한 예술계 내부의 장애도 만만치 않았다 대립과 분열, 궁핍과 자괴는 생태계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오랜 폐습으로 작용했다.
한국예술의 르네상스 하지만 한국은 그 잠재력을 충분히 가진 위대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신라의 찬란한 불교미술, 신라의 향가, 고려 말에서 조선조 융성기를 거쳐 신문학기 까지 우리문학의 뿌리가 된 시조문학, 판소리 등은 한국적 특성을 지니면서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한국의 르네상스였다.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시대에 따라 가치기준도 많이 변하고 사회가냉랭해 졌다 특히 남북 간의 긴장상태가 지속되면서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불안심리가 가중되고 있다 이런 때가 오히려 예술의 진면목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허탈과 절망을 위무하고 재생과 희망의 노래를 예술이 불어넣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상황은 정반대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때맞추어 정치적 변혁기를 맞으면서 물길의 흐름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출렁이고 뒤엎으면서 가치가 충돌하고 대립의 골은 더 깊어만 간다 예술이 이념을 포용할 것인가? 이념이 예술을 혁신할 것인가?
예술의 목적은 궁극적 미의 추구, 선의 추구에 있다 하지만 본질에 벗어난 이념논쟁 대립으로 예술 자체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오늘,실로 참담한 현실이지만 여기서 다시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하략)
(계간 시원 17 겨울호 권두시론)
-2부 '예술의 길 문학의 희망' (본문 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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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기금 공모, 도마에 올리다
판도라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결국 상자를 열었다 상자가 열리자 온갖 재앙이 빠져나가고 맨 아래 바닥엔 희망이 남았다 재앙을 두려워 말라 고통을 견디면 희망이 온다는 신화의 교훈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그 다음이 문제다 재앙이 될 것인가? 희망을 불러올 것인가? 지난 그 해 00문화재단은 문예기금 공모사업(전문예술창작)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문학부문 선정결과에 심사평과 심사위원 3명의 명단도 공개되었다 판도라의 궁금증으로 검색을 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3명 모두가 특정 이념지향 문학단체소속 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직감처럼 스쳤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초등학생 백일장도 공정을 기하기 위한 기본 룰이란 게 있는데--- 열어본 상자를 다시 닫아버릴까? 누군가도 열어봤을 텐데 그들은 왜 침묵하는가?
알면서도 침묵하는 건 양심을 속이는 것, 침묵이 그들의 그릇된 판단까지도 묵인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타성이 되고 고질병이 되는 게 아닌가? 문예기금 공모사업은 예술인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시행하는 정부사업이다.
문화예술위원회에서 기금을 관리 한다 기금 중에서 ‘지역협력형’ 사업이란 명분으로 각 시도 문화재단으로 예산을 내려보낸다 지역특성을 고려한 위임사업인 것이다 시도 문화재단은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다 지역(광역)의 문화정책을 관장하는 독립기구의 성격을 띤 셈이다 그러니 문화재단은 일정부분 재량권을 행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공모사업의 핵심인 공정성까지 외면할 특권은 없다.
문예기금 공모사업의 공정성 시비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충청 제주 울산 전북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문학 미술 음악 등 장르에 구분 없이 해마다 제기돼왔다 단골 메뉴는 공정성 문제다 공모사업의 핵심인 공정 심사가 도마에 오른 것이다.
(하략)
-2부 칼럼/ 예술의 길 문학의 희망-(본문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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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기분 좋은 상대와 대화를 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변을 토하신다.
그러니 옆에 있다 보면 침이 튀어서 꼼짝 못하고 침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열정적이면서 때로 작품과 만나면 한없이 꼼꼼한 성격이 되기도 한다.
오래 전에 발표한 작품도(신문이 노랗게 퇴색해서 너덜너덜해진) 틈틈이 꺼내서 다시 퇴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솔직히 내 경우는 한번 발표한 작품을 다시 퇴고하는 일은 많지 않은데 선생의
경우는 달랐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다.
한번은 댁에 놀러 갔다가 서너 시간을 족히 당하고(?) 말았다. 이야기인즉 한 일본 여인이 선생이 소장한 골동품을 감상하러 온데서 시작한다.
선생은 문학작품 뿐 만 아니라 서화에도 능하셨고 전각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셨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틈틈이 모아온 골동품이 집안에 즐비했다.
선생이 아끼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중에는 국보급으로 귀중한 것도 있었다.
아마도 다 감상하려면 하루로는 모자라고 삼일은 족히 걸릴 정도이니 그 규모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그의 작품 소재가 청자나 백자 혹은 민족과 전통을 많이 다룬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라 할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아호가 많고 그 중에는 열자가 넘는 것이 있다.
이 또한 소장품과 관련된 것이 많은데 ‘불역마천시루’(不易摩天詩樓)란 아호가 있다.
일본의 어떤 골동품 전문가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 도자기를 큰 빌딩 하나를 줘도 안 바꾼다는 말을 듣고 김상옥 선생은 흥분하여 그 정도라면 내가 소장한 도자기는 미국의 앰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도 안 바꾼다는 뜻으로 이런 아호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일곱 개의 수염과 세 개의 발톱을 가진 용이 새겨진 청자 항아리의 주인’이란 의미의 ‘칠수삼조처용지거 주인’(七鬚三爪處容之居主人)이라 하여 열자나 되는 아호를 쓰기도 했으니 참으로 일상적인 것을 뛰어넘는 기발하고 기이한 면모도 가진 분이었다.
일본에서 소문을 듣고 일부러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는 점에서부터-그녀의 미모와 골동품 안목에서부터 침을 튀기며 시간개념을 완전히 잊으셨다.
이야기인즉 그 여인이 하루 종일 도자기를 감상하면서 어느 백자화병 앞에 머물더니 “이 화병은 꽃을 꽂을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그 여인 왈, “백자화병이 외로워서 그 외로움을 달래줄 목적이면 몰라도 단순히 꽃을 꽂을 목적으로는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쯤에 와서 선생은 거의 황홀경이 되어 침이 마르는 줄도 잊었다. 수많은 골동품 애호가 예술인이 도자기를 감상하고 다녀갔지만 이런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는 것이다. (하략) ---
-1부 에세이-서정의 오솔길---(본문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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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시인 산문집 불멸의 새/ 칼라판 304쪽 현대시문학 발간
종이책/ 전자책 선택->
(책 소개와 저자 약력, 목차와 머리말 책값 책속으로는 <미리보기>를 클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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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와서
두 얼굴의 일본-야누스의 가면을 벗기고 그 민낯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어이 일본을 방문하기로 결심 했다. 1986년 여름, 유난히 무덥고 긴 여름을 보내야 했다. 그 때만 해도 정식 국교가 없던 시절이라 코앞의 일본이 머나먼 지구의 반대편처럼 느껴졌다.
출발하기 며칠 전 일본의 후지산을 비행하던 항공기 한대가 추락했다는 뉴스가 연일 이어졌다. 출발부터 불안과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당일 김해 국제공항 발 항공기가 이륙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구름이 낮게 깔린 후지산을 넘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나리타공항까지 불과 한 시간 반여 소요되는 길을 그 시대, 우리 가족은
살기 위해 관부연락선을 타고 삼일 여를 사투 끝에 일본 땅을 밟을 수 있었다고 한다.
히로시마에 겨우 정착하자 운명의 핵폭탄이 투하되던 그날,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은 수난의 가족사가 화석처럼 남아있는 히로시마- 악몽 같은 기억에서 정신을 차리자 나리타공항의 낯선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도쿄에 머무는 동안 일본어에 능통한 교감선생 한분과 함께 요미우리 신문사를 찾았다. 그때 나는 젊은 한국의 문인자격으로 일본의 대표신문사 편집 책임자를 만나고자 한다. 미리 작성한 기고문(寄稿文)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제목은 [일본의 양심과 히로시마 시민에게] 라는 편지형식의 글이었다.
편집부 기자들의 눈이 낯선 이방인, 흰 모시한복 차림의 나에게로, 시선이 쏠리는 것을 의식하면서 당당하게 걸었다. 문화부장이란 사람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국장이 부재중이라 대신 기고문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기고문은 편집회의 결과에 따라 게재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간다.
도쿄 시내 우에노 공원의 까마귀 울음은 펵 인상적이었다. 덩치도 큰 것이 ‘까악!’하고 울어대면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일본인은 이 검고 못생긴 새를 길조(吉鳥)로 여기며 호감을 갖는다니, 문화인식의 차이가 새삼 크다는 걸 느낀다. 공원에 세워진 백제 도래인(그들 말대로) 왕인(王仁) 박사의 기념비가 기품이 느껴진다. 일본에 한문과 유교를 전하고 정신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니 일본인에게는 은인이 아닌가?
도쿄 북부의 명승지 닛코와 일본천황의 별장이 있는 하코네의 아시호수를 둘러보고 일본 동해의 이즈반도로 향했다. 확 트인 푸른 바다와 화산섬이 연기를 내뿜는 환상적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와바다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 <이즈의 무희>가 펼쳐지는 무대인 이즈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둘러보면서 소설 속 인물들을 생각했다. 야스나리는 소설<설국(雪國)>으로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아직 고등학생인 갓 스무살의 청년은 불우하고 외로운 처지였다. 혼자 이즈 반도를 여행하다가 운명처럼 만난, 유랑극단 소녀와의 사랑이야기는 일본 순수서정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사무라이의 나라, 전쟁광이 설치는 살벌한 땅에도 저런 순수서정이 남아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략)
-5부 기행 에세이---(본문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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