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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May 12. 2022

시론, 김혜순  시의 비밀

[신간 문예 리뷰]


문학공간 22. 4월호 원고


詩가 있는 산문 12 / 어머니 달이 눈동자 만드시는 밤(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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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김혜순 시인은 한국의 여성시인 중에서 보폭(步幅)이 가장 넓은 시인 중 한명 이다. 그녀는 미당 문학상 등 각종 국내 문학상을 휩쓸었다. 나아가 ‘우물 안 개구리’를 거부하고 대양을 건너뛰는 퀀텀 점프(비약적인 상승)를 했다.

캐나다의 그리핀 시 문학상, 스웨덴의 시카다 문학상까지 석권하는 등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그녀가 그런 개성적인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김 시인은 78년 평론(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어 79년 ‘문학과 지성’지에 시로 등단한 후 문제작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김헤순의 시 경향에 대해 비평가들은 말한다. ‘독창적 어법’ ‘전위와 실험정신’ ‘첨예한 자의식과 전투적 상상력’ 등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왜 그가 그런 시를 쓰는지 제대로 분석해 내는 사람은 드물다.


모래 속에서 여자를 들어 올렸다/

여자는 머리털 하나 상한 데가 없었다/

여자는 그가 떠난 후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고 전해졌다/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숨을 쉬지도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와서 여자를 데려갔다/

옷을 벗기고 소금물에 담그고 가랑이를 벌리고/

머리털을 자르고 가슴을 열었다고 했다//

(중략)

모래 속에 숨은 여자를 끌어올려/

종이 위에 부려놓은 두 손을 날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낙타를 타고 이곳을 떠나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꿈마다 여자가 따라와서/ 감은 눈 번쩍 떴다

여자의 눈꺼풀 속이 사막의 밤하늘보다 깊고 넓었다//

-시 <모래 여자> 중에서


이 작품은 제6회 미당 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시인이 열사의 고비사막을 여행하면서 고대 공주의 미라를 직접 보고 느낀 팩트에다 상상력을 입힌 독특한 작품. 작품 전편에 흐르는 미라(여인)의 묘사와 그로데스크한 이미지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시적 화자는 대상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한 여인의 비극적 삶을 재조명 한다.

‘모래 여자’는 결국 굴곡의 삶을 견뎌온 여성의 환유(換喩)라는 점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페미니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랑으로 나를 버림으로써 오히려 너와 합일하려는 몸의 욕망을 보여주는 하나의 궤적이다. 나는 내 몸속에 새겨진 아픔과 병과 기쁨과 욕망을 통하여 남성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기쁨을 느꼈다.”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산문집 중에서


김혜순 시인이 산문을 통해서 밝힌 자전적 고백이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그녀의 페미니즘 시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김혜순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좀 더 깊고 너른 시상(詩想)의 바다에 들어가 본다.



나는 시방 바다로 걸어들어간다

머리를 베개 위에 반듯하게 얹고

두 손을 가슴 위에 나란히 포개고

그렇게 왼발 오른발 한밤내 걸어들어가면

우리 아버진 바다 깊이 잠들어 계시고


우리 어머닌 한 천 년째 바다를 휘젓고 계시다

그러면 세상의 파도란 파도

그 모든 파도의 물방울 방울마다

세상의 모든 아가들 영롱한 눈망울 하나씩 맺히고


우리 아버지 배꼽에선 연꽃 한 그루 억세게 높이 자라

그 연꽃 속에서 뛰어나온 청년이

바다 위 마을의 집집마다

영롱한 눈망울 두 개씩 배달 나간다


그러나 시방은 다시금 내가 그 바다에서 걸어나올 시각

나는 가슴에 나란히 포갰던 손을 풀고

오대양 육대주 넘실거리던

내 두 눈동자의 주름을 거두어들고

이불 밖으로 몸을 솟구쳐올린다


-<어머니 달이 눈동자 만드시는 밤> 전문


출전; 김혜순 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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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혜순 약력


▶79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 '또 다른 별에서'(81년)

'나의 우파니샤드'(94년) '한 잔의 붉은 거울'(2004년)

‘죽음의 자서전’(2916) 등 다수

▶김수영문학상(97년) 소월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제6회 미당문학상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2019) 수상

▶스웨덴 문학상 시카다상 수상(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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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적 판타지 혹은 고삐 풀린 화두

영성과 관련된 초월의 세계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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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 우선 당혹스런 느낌이 든다. 기존 시의 문법에서 많이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우파니샤드(고대 인도의 힌두교 경전) 속 창조의 신이 만물을 창조하는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전위적 실험정신, 자의식과 독창적 어법이란 모호한 표현으로 얼버무린다.

뭔가 독특하기는 한데 난해하다는 말은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일까?


보편적으로 ‘전위적‘ ’초현실‘이란 아방가르드는 영성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한다. 생각하는 인간이다. 현상의 갖가지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생각을 통해 분별을 한다. 그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에고(현실적 자아)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그 아래 이드(무의식)는 정보를 갈무리하는 영역이며 더 깊은 심충무의식은 갖가지 정보를 저장하는 퍼스널 클라우드의 영역이다.

어떤 계기로 영적 체험을 하게 되면 우주의 메인 클라우드에 접속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태초부터 인류가 지닌 원초의식 집단무의식까지 발현되는 호모 스피리투스의 영역에 진입하게 된다.


김헤순의 시는 깊은 무의식에서 길어 올린 상상력으로 시를 쓴다. 그래서 현상의 원리나 법칙, 시공간의 범주까지 벗어나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종횡무진 언어의 창조적 특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김 시인이 어떤 계기로 영성의 도움을 받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쓴 작품을 통해 그런 징후를 읽을 수 있다. 우선 그의 시집 <또 다른 별에서>81년) <나의 우파니샤드>(94년)에서의 우주적 발상, <피어라 돼지>(20016)의 동물에 대한 연민-같은 생명체로서, 같은 지구의 일원으로서의 물아일체(物我一體) 정신을 보여준다.


보다 직접적인 것으로 <죽음의 자서전>(2016)에서 “아이의 엄마가 죽은 아이를/

새장을 입은 채 나는 싸운다"에서 처럼 나와 남을 자타불이(自他不二) 즉 둘이 아닌 하나로 보는 평등정신 등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시집 <죽음의 자서전>은 죽음에 관한 ‘화두’에 집중하는 주제의 연작시다.

시인이 어느 날 전철 승강장에서 갑자기 쓰러진 순간, 자신이 문득 공중으로 떠올라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고독하고 가련한 여자‘하고 중얼거리는 가사(假死)체험을 한 후 쓴 것이라 회고한다.


위의 시 <어둠의 달이--->는 낯선 전위적 판타지에 초대하는 작품, 평범한 수평적 현상계를 벗어난 수직적 초월적 영혼의 세계를 펼쳐 보인 것이다.

그래서 시공을 초월한 신화의 밑바닥에서 태초의 신들과 조우(遭遇)한다. 시인의 언어를 통해 우주와 생명의 창조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가수면 상태의 잠자리에서 깊은 무의식의 바다로 내려가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난다. 아버지는 바다의 신, 너른 품이고 어머니는 쉴 새 없이 일으키는 파도의 신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합쳐져 브라흐마(힌두교에서 창조의 신)의 창조가 이루어진다. 그 피조물인 ‘연꽃 속에서 뛰어나온 청년’이 집집마다 배달하는 ‘영롱한 눈망울 두 개’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다.


“시인의 감수성이란 본래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 생각”이라며 “죽은 자의 죽음을 썼다기 보다는, 산 자로서 죽음을 쓴 시집으로 이러한 시적 감수성이 아마 심사위원에게 가 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김 시인은 시집 ‘죽음의 자서전’(영문제목 ‘Autobiography of Death’)으로, 한국 최초 캐나다 최고 권위의 그리핀 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한 소감이다.

그의 시는 ‘우물 안 개구리’ 처지의 한국시를 한 차원 끌어올리고 시의 영역을 대양으로 넓힌 독자적 업적을 이루었다. 그의 자유와 더 높은 도약을 향한 시의 여정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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