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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Jul 12. 2022

여름밤이 길어요(한용운)-문예 리뷰

[이 한편의 시]


여름밤이 길어요 / 한용운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에는 여름밤이 길어요


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나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 웁니다


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긴 밤은 근심바다의 첫 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아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 절망의 성(城)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깨어서 일천(一千) 토막을 내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때는 겨울밤이 짧더니 당신이 가신 뒤는 여름밤이 길어요


/감상 노트/


여름밤의 정서와 함께 구도자의 절절한 고백이 담긴 작품. 승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용운,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당신’은 누구일까? 화자의 대상이자 키워드인 당신 혹은 님, 학교에서는 연인 절대자 혹은 조국으로 배웠다. 승려나 시인보다 독립운동가로서의 역할에 비중을 둔 결과였다.

하지만 그의 시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구도자로서의 고뇌가 작품 전편에 녹아있다.

이 작품의 ‘당신’은 깨달음의 본질, 깨어있는 의식의 각성을 의미한다. 그런 상태는 시간이 무화되고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의 다른 시 ‘님의 침묵‘의 ’님‘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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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편의 에세이]


문학기행4 >>


하회마을에서 길을 잃다



안동에서 하회마을로 가는 길은 너른 들판을 지나

꼭꼭 숨겨둔 비밀의 문을 찾아가는 길


낙동강이 굽이돌아 시간을 잊고 길을 잃게 만드는 곳

안내소 입구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인의 관심과 유명세를 타는 문화유산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다.


하회마을은 우리들 기억의 저쪽,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찾아 가는 역사의 길,

탈바가지를 쓰고 양반을 조롱하던 질펀한 해학의 길

아랫것들 조롱에도 넉넉한 웃음으로 넘기는 양반과 선비의 길

그런 기억들이 교차하는 하회마을에 오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길을 잃고 헤맨다


마을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다시 버스에 올라야하는데

아뿔사 그만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하회마을까지는 제법 거리가 멀어 셔틀버스가 다닌다

초입부터 길을 잃었다 어쩌면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이

역류하는 이곳 별천지의 마법에 걸린 것인가?


안동, 유서 깊은 하회마을

덕분에 낙동강변을 따라 작은 오솔길을 걸어서 호젓한

기분을 누릴 수 있었다

하회마을 입구에는 온갖 형상을 새긴 목각인형이 반겨준다

하회별신굿에 나오는 갖가지 탈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낙동강이 뱀처럼 부드럽게 휘감아 흐르면서 하회마을을

감싸고돈다.(‘河回’란 지명의 유래이기도 하다)

유유히 흐르는 강 저편에는 높이 솟은 부용대가

물위에 앉아있는 은자(隱者)처럼 고요히 묵상에 젖어있다


하회마을이 한국의 전통마을로 고스란히 남게 된 것도

이런 지리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주변마을과 비교적 멀리 떨어져 ‘육지속의 섬’처럼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해온 것이 아닌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솟을대문이 딸린 기왓집과

소박한 추억을 전해주는 초가가 혼재해 있다

특히 이웃과 이웃,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토담길은 고즈넉한 느낌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향수를 전해주는 추억의 길


추억 속 우리 모두의 고향

한국인 특유의 소담한 정과 신분계층을 초월한 끈끈한 유대감은

600년을 이어온 이곳 하회마을, 마을공동체 정신의 뿌리가 아닌가?

마을이 안온하고 평온하다 그런데 어딘가 평화를 깨는

소란스러움과 불안의 기운이 느껴진다


왜 일까? 나처럼 이곳을 찾아오는 낯선 방문객 때문은 아닐까?

마을 주민의 상당수가 서울 등 외지에 거주하고 있단다

주말에나 한 번씩 찾아오는, 그들은 또 다른 실향민

마을 어떤 곳은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느껴지는 곳도 있다

너무 손질해서 보여주기 위한 과잉보존도 문제

낡으면 낡은 대로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 좋으리라


방문객은 주민의 자유로운 생활권,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길을 잃어버려도 다시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 저 멋대로 천천히 혹은 거꾸로 흐르는

하회마을은 길을 잃어서 더 아름다운 마음의 고향.


하회(河回)마을은?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동성(同姓) 마을이다

초가(草家)와 와가(瓦家)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대표적 유교 전통마을로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 2010년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하회마을은 조선중엽 학자인 겸암 류운룡선생과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치른

서애 류성룡선생 등이 배출된 역사마을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의 전래 놀이는 서민중심의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와 양반들의 ‘하회선유줄불놀이’(시회(詩會)를 겸한 선유(船遊) 놀이)가

있다. (*)


//////// 기청 산문집 《불멸의 새》 5부 나를 만나는 여행 225쪽에서



[문예 리뷰] //////////////////////


월간 《문학공간》 22. 6월호 원고


詩가 있는 산문 14 / 지는 꽃 (정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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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월간 문학공간 22.6월호 표지 통권 391호 주간(창간인) 최광호


민족의 아픔이 녹아있는 유월. 6. 25로 상징되는 사변 동란 혹은 전쟁의 상흔으로 우리의 뇌리에 남아있다. 차마 민족전쟁이란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신록의 산야에 하얀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고 흩어졌다. 아마도 이름 없는 전선에서 꽃답게 숨져간 이들의 영혼이 저리 처연하게 지상을 하얀 꽃 무덤으로 장엄하는 것인가?


정순영 시인은 74년 시 전문지 <풀과 별>지 추천을 완료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정 시인은 줄곧 서정시를 써왔다. 젊은 날을 대학교육 현장에서 보내고 일찍이 학정 총장의 소임을 다하면서도 틈틈이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시집으로 <시는 꽃인가> <조선 징소리> <사랑>등 시집을 펴내고 동인지 활동과 각종 문학상을 다수 수상한 원로시인이다. 근자에는 4인 시집(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을 출간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창틀에 맺힌 이슬방울 돋보기로

진초록 물결치는 건넛산 숲을 들여다보니

산새처럼

둥지 앞 나뭇가지에 부리를 닦고

아침을 노래하는

가난한 시인의 모습이 보이네

하늘처럼 해맑은 시인의 눈동자 속에

날개 푸득거려 훨훨 날아갈

천국이 보이네.>

-시 <이슬방울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정시인은 천생 순수 서정시의 화자(話者)처럼 마음이 여리고 순정(純正)한 데가 있다. 독하지 못한, 휴머니티의 소유자란 의미다. 이런 점은 심리학적으로 아니마(Anima)적 요소(남성 속의 여성)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산새’-‘가난한 시인’의 비유를 통해 욕망을 내려놓은 청정한 삶을 동경한다. 그것은 궁극의 지향점(천국)에 다가가기 위한 전제임을 인식한다. ‘이슬방울(돋보기)’는 그런 심안(心眼)을 열게 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시인의 성장과정에서 마주한 자연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문명의 오염에서 빗겨난 천혜의 고장 하동, 섬진강 하구의 청정무구한-넉넉하고 유장한 품성을 닮은 것인가. 하지만 현실은 그런 유유자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숨 가쁘게 다가오는 일상의 부딪힘에서, 아프게 조여오는 시국의 소용돌이에서 눈을 감을 수 없는 사명이 회초리를 들게도 한다.


<복지회관 강당에서/ 흑보기 눈을 뜬 자가 단상을 치니

팔八자 입을 한 군중이 박수를 친다.


짐이 법이다/ 짐에 박수를 치는지/ 법에 박수를 치는지//

나는 바담 풍風 해도/ 너는 바담 풍風 해라//


짐이 물러가라만 배워서 아는 게 물러가라 뿐이니

거짓말 하다가 거짓말이 참말인줄 알고

백성에게 참말을 하니


하늘이 찌푸려 백성의 허리가 아프고

양심에 억제 받지 않는 위대한 지도자 짐은 법이니

법을 어기는 자는 복지를 받지 못하는 나라의

복지회관에서 밥을 얻어먹는다.>

-시 <밥을 얻어먹으며>에서


우화적(寓話的) 해학적 분위기와 어조를 통해서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시다.

결 고운 전통서정을 담아내던 정 시인의 경향성이 현실의 광장에서 때로 거칠고 엄

중해지기도 한다. 무엇이 그의 식탁(시의 경향성)을 바뀌게 했을까?

‘짐은 곧 국가‘라 외치던 절대 권력의 상징 루이 14세, 강하지만 어리석은 군주,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해 결국 스스로 멸망했다. 그가 남긴 건 훗날 역설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을 뿐. 그가 죽었을 때 시민들은 영구차 뒤

에다 침을 뱉었다.


“거짓말 하다가 거짓말이 참말인줄 알고/ 백성에게 참말을 하니”에서 정직하지 못

한 지도자의 꼼수가 나중에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양심에 억제 받지 않는 위대한 지도자 짐은 법이니/ 법을 어기는 자는 복지

를 받지 못하는 나라의/ 복지회관에서 밥을 얻어먹는다“

‘양심’이 없는 지도자가 의탁하는 법은 신뢰가 없는 한갓 권력자를 위한 도구에 지

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경고하는 것이다.


지는 꽃의 이름을 묻지 말라.

봄물에 연두 붉은 생기를 머금고 볼 시린 꽃봉오릴 터뜨린

울음의 사연을 묻지 말라.

그 삶이

화사하였든

수수하였든

고독하였든

노을빛 추억을 품고 지는 꽃의 이름을 묻지 말라.

바람에 흩날리는 꽃의 영혼은

별이 되리라.

누군가의 가슴에 아리는 아리따운 그리움으로

영원히 지지 않는 별이 되리라.

-시 <지는 꽃> 전문


출전;『한국시학』(201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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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순영(鄭珣永) 약력

경남 하동출생, 1974년 시전문지<풀과 별>추천완료. <흙과 바람> <4인시> 동인

부산펜문학상 대상, 여산문학상, 한국시학상, 현대문학100주년 기념문학상,

동명대학교 총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34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현) 서울시인협회 부회장, 경기시인협회 부이사장

시집<시는 꽃인가><조선 징소리><침묵보다 더 낮은 목소리> <사랑>

<4인 시집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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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대상이면서 화자의 정서적 분신

작위(作爲)나 획일 아닌 존재 자체의 의미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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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지는 꽃>은 ‘꽃’-‘야생화’란 작은 존재의 생멸(生滅)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 대해 시인이자 비평가인 이승하는 다음과 같이 평설을 하고 있다.


<정순영은 시에서 이 땅의 서민들, 흔히 민초(民草)라고 일컫는 이들을 꽃이라고 부릅니다. 며칠 피었다가 시드는 꽃 가운데 장미나 모란 같은 화려한 꽃도 있지만 들판에서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고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들도 참 많습니다. 그 들꽃들을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세상에 이름도 못 남기고 평범하게 살다 간 서민대중의 이름을 가족이나 친척 외에 누가 기억을 합니까. 하지만 그들의 삶이 화사했든 수수했든 고독했든지 간에 그분들의 가치는 어느 정치가 못지않게 소중한 것입니다. 누군가의 가슴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으므로 그분은 “영원히 지지 않는 별”인 것입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에서


‘꽃’을 이름 없는 서민 민초(民草)로 보아 소박한 감상과 해설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시 <지는 꽃>은 ‘꽃’이란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시적화자의 정서적 분신이란 점에서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현상은 존재의 크기(대소) 신분(귀천)에 따라 가치를 부여한다. 크고 귀한 존재가 가치 있는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 시의 관점은 좀 다르다. 작고 흔한 것이라 해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나 ’사연‘’추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꽃의 ’이름‘은 어떤 작위(作爲)나 획일을 규정하는 상징이다. 그것마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나 ’사연‘을 묻는 것을 거부한다.


‘꽃’은 곧 이름 없는 존재(인간)의 비유지만 시적화자의 객관적 상관물(정서적 분신)이 되기도 한다. ‘봄물’(생기, 청년기)과 노을(추억, 노년기)의 생애가 어떠했는지(화사, 수수, 고독) 보다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인식과정을 통해 ‘꽃’은 ‘꽃의 영혼’으로 승화되고 ‘별’의 영원으로 구원(久遠)을 지향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상을 단순한 비유 이상의 정신적인 것으로 확장시킨다.

사물을 통해 화자의 심리 저변까지 들추어 승화되면서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순영 시의 장도에 ‘들꽃’처럼 풋풋한 생기와 열정, 그리고 자존(自尊)의 매향(梅香)이 그윽하기를 바라면서 이글을 맺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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