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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Sep 09. 2022

한가위에(이해인) 생명의 시(문정희)


[시인과 문예통신] 22. 9. 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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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가족과 함께 밝고 맑고 편안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난 수해 태풍피해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이 

하루빨리 생활로 복귀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2. 중추절에, 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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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기도-한가위에(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수녀시인,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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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이중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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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으로 푸는 삶과 문학  

기청 산문집 /  불멸의 새


-------- -명작시의 재해석 

기청 시론집 /  행복한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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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교보문고 검색<불멸의 새(행복한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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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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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문학공간 22. 8월호 원고


詩가 있는 산문 16 / 생명의 詩(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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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시인 문정희는 69년 <월간문학>지에 ‘불면’과 ‘하늘’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아직 교문을 나서지 않은 천진한 여대생의 문단 진출은 기대와 부러움, 시기와 배척의 표적이 되었다. 날아오르는 신데렐라의 꿈도 잠시, 현실의 살벌함과 냉혹 앞에서 몸으로 맞서야 한다는 깨달음을 일찍 얻었다. 그는 아직 뿌리 깊은 남성중심의 문단풍토에 쉽게 무릎을 꿇을 수 없었다. 굴종 대신 도전을 택했다. 보란 듯이 더 당당하고 솔직한 에로스의 언어로 도전했다.


《--시인으로 고민해야 하는 건 창의력의 고갈이나 자기 자신의 문학성의 척박함이어야 했다. 하지만 문 시인이 정말 힘들게 한 건 패거리 문화와 편견이 팽배한 한국 사회와 한국 문단이었다. 그는 “다양한 걸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척박한 땅에서 꽃이 피는 것처럼 힘든 점이 있었다”고 했다.》

-등단 50년 무렵 한 미디어 대담에서



의 말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살아남은 비결은 “이를 갈고 시를 썼다.”는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었다. 생기발랄한 청춘기에서 이제 고희를 넘은 오늘, 그가 바라던 대로 여류시인 아닌, 한국문단의 대표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주요문학상과 스웨덴 시카다 문학상을 수상하고, 11개 외국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또 근래에도 여러 차례 해외단체 초청으로 독자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왕성한 활동을 가능케 하는 문정희 시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여성성이란 것은 사회적 타자나 약자, 제2의 성이 아니라 대지모(大地母), 엄청난 생명의 원형이자 늑대 같은, 누구도 이 혼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힘이 본질적으로 내재돼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인은 여성이어야 해요. 여성은 창조주니까요. 그래서 '여성 시인'이라는 게 참 좋아요. 이제 가닥을 잡은 느낌이랄까. 아직 부족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시집 <작가의 사랑> 출간후 미디어 대담에서


스스로 여성시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여성성의 근원을 밝힌다.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힘은 창조에 기여하고 시는 언어예술의 창조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인정한다.


문정희 시의 두드러진 특성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감각적 언어에 집중한다, 그 결과 유난히 여성의 신체와 관련된 시와 여성성을 상징하는 시집이 풍성하다. 초기작인 ‘불면’에서 ‘탯줄’ ‘거웃’‘나의 자궁’ 등의 시와 시집으로 <다산의 처녀> <나는 문이다><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등을 내면서 화제를 모았다. 표층적 관점에서 보면 일차적으로 ‘마음 문에 홍등 달기’를 통해 관심 끌기에 집중한다. 제도나 관습에 젖어 있는 기존의 ‘샌님’ 시학을 자극한다. 은밀한 그늘(관능)의 실체를 노골적이고 당돌한 비유의 언어로 조롱한다


.<벌써 남자들은 그 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는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두면 살아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처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드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무언가 확실히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 (후략)

-시 <치마>에서



이만하면 관심 끌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불온하지만 천박하지는 않다. 조롱하지만 격식을 차린다. 은밀하게 가려진 성전을 추앙하는 세상의 남성들에게, 혹은 외면하는 그들을 향해 차라리 ‘신의 후손‘이라 추켜세우니 반론의 여지까지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다. 하지만 이 시에 답하는 용감한(?)시인이 있어 그나마 안도할 따름이다. 그가 바로 임보 강홍기 시인(전 충북대 교수) 이다.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 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을 꿇어/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만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되면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후략)

<치마>에 대한 답시



막상막하다. 다만 놀라운 것은 샌님시학에서 터부시하던 음지의 시학을 이리 기발한 상상력으로 시의 옷을 입힐 수 있는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관삼끌기의 다음 단계는 중층적(중도적) 관점으로 에코페미니즘(양성 평등)의 확립이다. 여성성의 정체성과 양성평등, 나아가 사회문제로의 확산이다. 그것은 시 ‘유방’과 ‘러브호텔’ 등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드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한 때는 사랑의 상징으로 아기를 키우는 모성의 대자비였지만, 유방암 검사를 받으면서 ‘패잔병’처럼 슬픈 자신을 보며 새삼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법리를 느낀다.


“오늘, 강연에서 한 유명 교수가 말했다/ 최근 이 나라에 가장 많은 것 세 가지가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라고/ 나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러브호텔과 교회와 시인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내 몸 안이었으니까/ 러브호텔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한 에로스와 로고스의 원형을 통해 자의식의 이중성, 선과 악의 모호성, 문란한 오늘의 성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 시 ‘러브호텔’도 관심을 끈다. 그런가하면 대담집 <여자의 몸>을 출간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일본의 한 대학에서 ‘여자의 몸’을 주제로 한 강연회에 초청되어 자작시 <딸아 미안하다>를 낭송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비극과 아픔을 노래한 시를 통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시간이란 한낱 美文

그  부끄러움 위에/ 떠돌게 하소서

달빛 꾀어내는 풀피리에도

몸이 달아

냄새와 능멸로 살아나는 배암이게 하소서


천하고 무지한 신명들려

햇빛이 직선으로 쏟아지는

거친 돌밭에 입으로는 말고

몸으로만 몸으로만 소리치게 하소서

생각이란

생각은 죄다 벗고

무서운 비밀을 본 者처럼

두 눈도 없이 시간의 황홀한 江가에 내내/

비늘로 떠돌게 하소서

-<생명의 詩> 전문


출전; 문정희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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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정희 약력


*47년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 수여.

*진명여고 재학시 시집 <꽃숨> 발간.

*69년 《월간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등단

*76년 제 21회 현대문학상 수상.

*2010년 제7회 시카다상 수상.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외 다수

*산문집 <젊은 고뇌와 사랑> <청춘의 미학> <사랑의 그물을 던지리라>외

*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역임

*한국시인협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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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와 속죄양의식, 신화 원형의 모티브


근원의 건강하고 온전한 생명성 회복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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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를 비로소 언어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그것은 깊은 무의식의 보고(寶庫)를 시의 언어로 끄집어내는 능력에 있다. 그것은 신화 원형적 접근이며 내재한 원초적 감응을 통해 본질에 도달하려는 처연한 몸부림이다.

앞의 <생명의 시>에서는 원죄와 속죄양의식이라는 신화원형의 모티브가 전제되어 있다. 전반부의 ‘달빛’ ‘풀피리’ 배암‘은 에로스적 욕망의 분출을, 후반부에서 ’햇빛’ ‘거친 돌밭’ ‘몸’은 속죄양의식을 상징한다.


“달빛 꾀어내는 풀피리에도 몸이 달아”는 이브를 꾀어내던 저 간사한 뱀을 떠올린다. 화자는 차라리 관능을 쫓던 태초의 사악한 뱀이 되고자 한다. 스스로 악역을 자처하여 벌을 받는 속죄양의식을 통해 철저히 자신을 비워낸다. 자의식의 정화를 통해 건강하고 온전한 생명성의 근원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런 원죄의식의 모티브는 일찍이 미당 서정주의 시 <花蛇>에서 빛을 발했다.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석유(石油) 먹은 듯……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배암.

-미당 서정주 <화사>에서


미당의 압권이 빼어난 감각적 묘사에 있다면 문정희의 <생명의 시>는 원죄와 속죄양의식을 통한 정화에 있다. 두 작품은 모티브와 함께 어딘가 은밀하게 풍기는 표현상의 유사성은 숨길 수가 없다. 여고시절부터 등단이후 줄곧 미당과 사제지간으로 미당이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지근(至近)거리에 있은 인연의 필연인지 모른다.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다. 서정주의 <화사>나 문정희의 <생명의 시>에서 시적화자가 왜 ‘뱀’을 사악한 존재로 보고 저주의 대상으로 보는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원죄와 속죄양의식의 모티브는 근대 서구에서 유입된 창조신화 원형에 기인한 것이다.

시인의 관점은 무의식에 저장된 세계관을 중심으로 결정된다. 그것은 다시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로 작동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여기는 중도의 동양적 세계관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문정희의 시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자의식을 감각적이고 섬세한 기교로 표출하는데 기여한 평가를 받고 있다. 세상을 품고 데우는 여성성의 온전한 생명성을 되살리고자 했다. 한국 페미니즘(Feminism) 시의 정립과 담론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몸으로 맞섰다. 식지 않는 열정과 생생한 시의 언어로 길을 제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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