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르바나 Dec 08. 2017

무차행으로 만나는 늦가을 서정(2)

-신비의 마이산, 시공(時空)을 잊다


사진출처/ 우버인 


[Travel Essay] 


무차행(?)으로 만나는, 늦가을 서정(2)

-신비의 마이산, 시공(時空)을 잊다


마이산은 생김새도 기이하지만, 수많은 돌탑과 사찰로 이루어져 신비스런 영감을 불러오는 곳 

마이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건국의 꿈을 품고 백일기도를 드린 영산으로 알려져 있다  

고궁에서 보는 용상(龍床) 뒤의 ‘일월오봉도’는 마이산이 밑그림이 된 것이라 한다 마이산은 

암마이봉 수마이봉으로 말의 귀와 흡사해 붙여진 이름, 전북도립공원 이다,


새벽안개 뿌연 계단을 오르며

전주에서 한 시간 남짓을 달려 해질 무렵 진안에 도착했다 길을 물으니 마이산 남로와 

북로쪽 두 가지 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단다 우리는 당장 숙박이 유리한 북로쪽을 택했다 

 마이산 올라가는 앞자락에 큰 저수지가 있었다 물위로 나무통로가 있고 끝자락에 불빛이 

비치는 카페가 있어 분위기가 오붓해 보인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적이 있다 아침 해가 뜨기 전 고요한 물위에 두 귀가

쫑긋한 마이산이 거울처럼 비친 모습, 신비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오늘 이곳에

오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둘이면서 하나인, 하나이면서 둘인 마이산은

억 년을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쩌면 부부와도 오누이와도 같은

정겨운 모습으로, 세월을 비껴가는 신뢰와 사랑으로 우뚝 서 있다.


마이산 앞자락의 한 콘도에서 밤을 새우고 이른 새벽에 마이산에 올랐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나무들이 부연 안개 속 명상에 빠진 수행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무에서  후둑 후둑 빗소리가 떨어진다 비가 아니라 나뭇잎에 맺힌 안개비 였다

 나무계단을 하나 둘 오르면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야릇한 느낌이 든다

산은 우리 두 사람을 반갑게 품어주었다.





이마가 서늘하고 머릿속이 맑아진다 모처럼 속박에서 풀려난 자유를 느낀다

익을 대로 익어 간간이 바람에 흩어지는 단풍을 보며, 무상을 장엄한 결별을

새봄의 말없는 약속을 은밀한 대자연의 섭리를 느낀다 전설 속의 신들이

어슬렁거리는 숲속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유년의 내가 하염없이 손을 흔들고.

두 봉우리가 만나는 등성이에 섬진강과 금강의 발원지가 있었다.


북은 금강이 되고 남은 섬진강이 되는 갈림의 원점, 한 방울 한방을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침내 

거대한 강줄기를 이룬다니 신비롭다 저 물방울 하나가 모여 섬진강 나룻배를 띄운다니, 

다른 하나는 금강의 온갖 물고기며 생명들을 키운다니, 물 한 방울의 힘이 놀랍다 그 창조의 힘 

포용과 융화의 손길이 숭고하다.





섬진강 금강의 발원지, 한 방울이 모여

좌우로 암수 마이봉에 오르는 등산길이 나있다 한쪽은 낙석위험 표지가 있어

다른 쪽으로 한참을 걸었다 나무들이 늦가을 바람에 서걱인다

곱게 물든 단풍잎을 아낌없이 던져준다 저 거침없는 용기 아름다운 결별의

시간, 떠나야할 때를 아는 저 눈 밝은 지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단풍 탄다/ 눈물 찔끔// 피 흘리는 꽃다운 순교/

떠날 채비 부산할 때도/ 억새는 억새끼리/

기우뚱 비탈진 능선에서서/ 마른 가슴 부대끼며//

(중략) 모두가 떠나는 길목에 서서/ 흰 손수건 날리며>

나의 졸시 <억새는 억새끼리>를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그렇다 피 흘리는 ‘꽃다운 순교’일지 모른다 지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대신해, 새로운 봄을 잉태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는 아름다운 결별,

버림의 미학(美學)을 우리는 잊고 산다 움켜쥐고 바둥거리는 탐욕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질긴 무명 때문이다.





등성이 아래 계단으로 한참을 내려가면 은수사가 나온다 새벽안개가 절 마당을 감싸고 대웅전 

뒤로 보이는 암석봉우리는 마치 선정에 든 부처님 모습처럼 온화하고 고요하다 우리는 어둑한 

법당에 나란히 앉아 합장을 한다 불단 앞의 탱화가 어지러이 일렁인다 소리 없는 목탁소리가 

귀를 울린다 법당을 나오니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나무들이 깨어난다

650살 된 청실배나무가 말없는 성자처럼 서있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마치고 심은 나무라 한다 

 그날 그의 기원이 아직 저 나무에 서려있는 것일까?


마이산은 아득한 중생대 백악기에 호수가 솟아올라 생긴 역암층으로 이루어졌다

호수밑바닥의 자갈 모래가 아직 원형 그대로 생생하다 멀리서 보면 매끈한 모습이 가까이서 

보면 곰보얼굴이다 마치 금방 시멘트를 부어 엉겨붙은 콘크리트 덩이처럼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억년 오랜 세월, 열과 비바람을 견디고 우뚝 선 모습이 높고 위대하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면 돌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탑사로 이어진다 한 무명처사의 기원이 

서려있는 돌탑들이 즐비하다 탑 하나, 돌맹이 하나에는 시공을 넘어서는 원력과 서원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마이봉 거대한 밑뿌리를 감싸고 기어오르는 담쟁이 넝쿨은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실현하는 거룩한 손길인가?





무차행은 기다림과 인내의 여정

늦가을 어느 날 감행된(?) 2박 3일간의 여행,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우리 여행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여행은 어디로 떠나는 것이 아닌 돌아오기의 연습이다 비우고 비워내는 가벼움, 그 담담하고 

홀가분한 버림의 여정이다 낡고 부질없는 것들과의 결별, 온갖 탐과 성냄과 어리석은 것들의 

추방으로 자신을 가볍게 하는 담금질이다


무차행은 때로 답답하고 불편하고 구차해보이지만 기다림과 인내로 영글어가는 과실, 혹은 

구도(求道)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천천히, 가급적 느릿느릿 쉬어가는 시간을 

경험했다 바쁜 일상의 다급한 알람소리나 반복되는 방송광고의 짜증, 바삐 달리는 탈것들의 

시끄러운 소음도 없다 걷고 노닐다가 기웃거리는 여유가 금보다 귀하다.


마이산 안개 자욱한 신들의 거처에서, 시공의 무상함을 느꼈다 억겁 쌓인

시간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 거대한 창고에라도 숨겨놓은 것일까?

끝없는 시간의 윤회, 결국 어제는 오늘이 되고 미래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닐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란 그물에 걸려 살지만, 마음은 걸림 없이 자유롭다.

여행은 그런 자유를 현실로 실현하는 용기, 삶에 활력을 주는 인생의

여백(餘白)이 아닌가? (完)


글- 청사 (시인 문예비평가)

매거진의 이전글 무차행으로 만나는 늦가을 서정(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