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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Jul 21. 2018

남해 보리암에서 나를 잊다

-니르바나에 이르는 길

[Travel Essay]


 남해 보리암에서 나를 잊다

 -니르바나에 이르는 길



연일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며칠 장맛비가 대지를 서늘하게 식히더니 어느새 슬그머니 실종되었다

사람들은 아우성이다  며칠 비가 오면 홍수로 아우성이고 잇따라 불볕이 

쏟아지면 더위로 아우성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인간계를 사바세계라 한다  참고 견디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그래서 인욕(忍辱)의 미덕은 옛사람들의 주요 덕목이었다  부채하나로도 거뜬히 여름을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절에서 공부하는 수행승에게는 하안거(夏安居)에 들어 내면에 

몰입하면서 수행의 호기(好期)로 삼았다  아직 거기까지는 못가지만, 문득 사찰의 

여름 냄새가 궁금해진다.



눈이 시린 초목으로 겨우 몸을 가린 고찰(古刹) 그 고색창연함, 제멋대로 낡아 

흔적만 남은 단청, 그 신비로운 시간의 향기가 짙은 그리움으로 어른거린다

매미소리 바람소리도 숨죽여 가뿐한 구름으로 머무는 곳, 시간도 세속의 번뇌도

일체의 시비분별이 무쇠처럼 녹아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청정으로 합일되는

본성의 고향, 사찰은 그런 오래된 고향의 냄새가 아직 남아있는 그런 곳이 아닌가? 

   

    

오랜만에 남도의 끝자락, 남해 보리암을 찾았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시원하다 

섬진강 휴게소를 지나 언뜻 하동이란 이정표가 지나간다  잠시 후 남해대교 너머로 싱싱한 

바다가 출렁인다  활짝 가슴 열어젖힌 이 넉넉한 푸르럼의 자유, 찌든 속진을 유혹 한다   

다랭이 논과 낮게 엎드린 마을을 스친다  얼마 후 보리암 본찰인 유서 깊은 용문사에 도착했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조선 현종때 이곳으로 옮겨지었다 한다.


절간 뒤 호젓한 호구산 자락에 조성한 녹차밭에는 짙은 빛깔의 녹차향기가

바람결에 감도는 듯, 그야말로 오래된 흔적만 희미한 절간 단청이 먼 시간의

기억을 불러내고 있다  지금 여기 선 나는 누구인가?  나의 그림자일 뿐인

무명의 나는 때로 귀찮은 감시자였다  간섭하고 시비 걸고 탐하며 화내고 

때로 우쭐대며 철없이 굴었다  그런 내가 싫었다  허구의 낡은 거죽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나를 깡그리 포맷하고 싶었다  완전히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었다.



사찰입구에 조촐한 규모의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문학공원이 있다

선생은 남해 섬 안의 작은 섬인 노도(용문사 인근)에 유배되어 만년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 용문사 주지 성전스님의 남다른 관심으로 공원이 만들어졌다  서포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눈 밝은 한 스님의 세운 뜻이 그나마 잊혀진 흔적을 더듬게 해준다  

최초의 국문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등 한글로 쓴 빼어난 문학작품을 

남긴 서포의 정신을 가늠하게 한다. 


 

한려수도 국립공원의 남해 금산, 기암괴석의 끝자락에 신선처럼 앉아있는 보리암.

말 그대로 신비의 적멸보궁 극락전이 위태로운 절벽 끝, 사뿐히 앉아있다  

영험 있는 관음기도처로 전국의 불자들이 찾아오는 절경 속 작은 암자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처음 보광사를 지었다 한다  인도의 왕비 허황옥이 가져왔다는 관음보살상이 

남아있는, 먼 설화의 현장이다 


  

뿌연 해무가 끼어 대낮도 꿈속인 듯 아늑하다  여기가 니르바나 입구인가?

아찔한 절벽위에 멀리 상주 앞바다를 굽어보고 서 있는 해수관음보살상. 

기실 님이 굽어보는 것은 끝없는 중생의 고통의 바다가 아닐 것인가?

▶출전/ 미발표작


 글 사진/ 기청(시인, 문예비평가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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