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르바나 Apr 17. 2020

바다의 안부-소피스트에게(1신)

[Lylic Essay]


바다의 안부-소피스트에게(1신)


내 친구 소피스트sophistes, 

그대 안부도 그러하지만 불현듯 바다의 안부가 궁금해졌네

그래서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지. 그동안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느라 많이도 지쳤어. 나도  그대 친구나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가 말일세,

오래 갇혀 살다보니 죄 없는 죄인이 되었네, 

그래서 바다의 얼굴이라도 보면 가슴이 트일까, 그 보다 내가 살아있다는 작은 확신이라도 생길까 해서 말일세.



내 친구 소피스트 우울한 친구여, 

그러니 너무 심각하지도 우울해하지도 말게나. 세상은 그리 심각한 게 아니지. 끝이라 생각하면 또 다른 길이 보이지. 그대는 원래 현자(賢者) 아닌가?  그 말 많은 소요학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가 '궤변가(詭辯家)'란 달갑지 않은 별명을 주었지만 말이네, 친구여 세상에 진리라는 게 존재한다고 믿나? 그대가 목숨을 걸고 옹호하는 절대 진리란 게 말이네. 이를테면 진실이나 정의 양심이란 게 존재한다면, 하룻밤 사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이 불가사의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 



존경하는 내 친구 소피스트여, 

바다는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네, 우선 가까운 섬에 가기로 했다네. 운 좋게 물때가 맞았지. 모세의 기적처럼 양쪽으로 개펄이 드러난 바닷길을 한참 달려 마침내 그 섬, 제부도에 내렸지. 짭조롬한 갯바람에 막힌 숨이 확 트였어. 순간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실종된 영혼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네.  

사람들 발길이 뜸해진 제부도의 원주인은 역시 갈매기, 그 희고 멋진 날개와 부리에, 개성적인 울부짖음, 녀석도 내 마음을 아는지, 끼룩 끼룩 대신 울어주는 느낌이었네 그려.



변함없는 친구 소피스트여, 

우울하거나 너무 슬퍼하지 말게나, 자네의 신념을 믿어주는 여기 또 하나 우군(友軍)이 있지 않나?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보다 더 위대한 신념의 친구여.   

그런 기적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잠시 파도에 덮혀 흔적도 없지만,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게, 아주 사라진 게 아니거든,  자네가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는 가치-진실이나 정의 양심 같은, 진리라는 거룩한 이름, 잠시 몸을 숨겼을 뿐이네, 여전히 살아 있네, 그리고 불멸(不滅)의 증언을 기다리고 있을 뿐, 친구여,

(글 사진-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매거진의 이전글 남해 보리암에서 나를 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