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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Nov 25. 2018

펜은 칼보다 강하다?

-나의 벗이자 충직한 비서, 펜의 변천사

[Photo Essay]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 ‘대단한 무기’로 무엇을 하였는가?

목마른 갈증을 풀기 위해 겨우 무나 수도 없이 깎아 먹었는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감성의 아귀‘가 된 것은 아닌지,

먹지 않아도 배부른 ‘황금빛 종소리’를 찾아 아직 노을이 물든 들판을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


***내 40여년 글쟁이로 살아온 결실의 가을은 초라하지만 

내 영혼의 배는 부르다

그것으로 나의 펜은 칼보다 강하고 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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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나의 벗이자 충직한 비서-펜의 변천사


펜은 칼보다 강한가?

글 쓰는 도구에 불과한 펜을 무기에 비유하다니,

펜은 기껏 원고지 칸이나 메우지만 칼은 적장의 목을 자르기도,

펜은 요술쟁이다  시인의 서정을 풀어낼 땐 부드러운 베틀이 되지만

불의에 항거할 땐 꺾이지 않는 대나무가 된다 

칼이 되고 불이 되고 불멸(不滅)의 불사조가 된다.


나의 생각 감정을 풀어내어준 펜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내 곁을 지켜주었다

처음 펜촉을 잉크병에 찍어 쓰는 방식은 불편했다  자칫 실수로 잉크가

쏟아져 하얀 종이를 송두리째 버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파란 잉크냄새의 추억

유리병에 파란 잉크가 조금씩 줄어들면 나중에는 펜촉이 젖지 않아 글을

더 이상 쓸 수가 없는 안타까운 일도 생긴다

서양에서는 펜대에 새의 깃털을 달아 멋을 부리기도 했다

윌리엄 섹스피어나 단테의 원고지 위에 놓인,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오선지 위에 놓인 

멋진 깃털 펜을 보면 자유와 무한한 상상력을 느낀다.


그 뒤로 만년필이라는 게 나왔다  작고 손안에 꼭 쥐는 부드러운 느낌은 

연인처럼 푸근한 느낌을 준다  

양복 윗주머니에 꽂고 다니면 지성의 상징처럼 믿음직스럽기도 한 것이다  

얼마 후에 볼펜이라는 요상하고 편리한 필기구가 나왔다 

잉크처럼 쏟아질 염려도 없다  하나면 원고지 수십 수백장을 메우고도 남을 

녁넉한 여유가 충만해있다  마치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듯 술술 풀려나오는

생각의 실타래는 마술과도 같았다. 

 

만년필형 고급볼펜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잉크식 만년필은 또 구식이 되었다  하지만 

편리성이라는 요구 앞에 잉크는 그 자리를 내어주고 밀려나는 신세가 될 수밖에, 

그런데 가끔 야외에서 영감(靈感)이 번개처럼 스칠 때, 만년필이나 볼펜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현장에서 떠오른 근사한 감상이나 싯구를 글로

바꾸어 쓸 수 없는 안타까움, 참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간혹 불에 타다 남은 나뭇가지라도 발견하면 요긴한 펜이 된다

숯검댕이로 대충 핵심어만 종이에 그려 집에 도착하면 즉시 글로 재현한다

그때의 감상이 제대로 글로 변환되지 않을 때의 난감함, 

아마 글쟁이들은 더러 같은 경험을 갖고 있으리라.


타다 남은 솣검댕이로 그리다

생각을 보다 빠르게 편리하게 글로 변환하기 위한 욕망은 멈추지 않았다

개인 집필실에서 사무실에서 그런 욕구를 채워줄 근사한 기계가 나왔다

타이프라이터, 책상 앞에 앉아 토닥 토닥 빠르게 글을 찍어나가는 사람의 폼까지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문명의 산물이 탄생한 것,

내가 직장생활을 한지 얼만 안되어 이런 요상한(?) 것이 나왔다  나는 월급을

아끼지 않고 맨 먼저 그 물건을 샀다  양쪽으로 감긴 먹지가 돌아가며 타닥타닥 박자를 맞추며 

글자를 찍어내는 신기한 기계 앞에서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또 다른 문명의 이기가 선을 보였다  컴퓨터란 요상한 물건이 나오고 

워드프로세서란 것이 새로운 히어로로 등장한 것이다

불편하게 감아주고 갈아주는 먹지도 필요 없는 전자식 워드가 나온 것이다

그 당시 공직생활을 하면서 실무교육을 가면 막 등장한 286 컴퓨터 원리와

구동법을 배웠으니 상당히 앞선 공부를 한 셈,


내가 처음 개인용 컴퓨터를 산 것은 90년대, 초기의 삼보 노트북, 저장용량이 1.75기가에 

불과한 구식이었다  말이 휴대용이지 부피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들면 어깨가 축 쳐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손쉽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고마움은 어떤 값진 보배보다 더욱 값진 것,


다음으로 산 데스크탑은 삼성 Sync Master Magic 이다  제법 넓은 와이드 스크린에 저정용량이 

500기가나 되니 왠만한 문서 사진 동영상 자료를 저장할 수 있어 불편이 없었다  

그담으로 내 곁을 지키는 비서는 All in one(일체형) PC 로 본체가 없어 자리를 덜 차지하고 간편하다  

물론 일반 PC에 비해 속도감이 약간 뒤지는 점이 아쉽지만, 테라바이트급 저장공간에 

와이드 스크린이 시원한 것이 장점. 처음 윈도X 로 시작해서 윈도 7, 윈도 10까지 업그레이드 

하면서 성능도 향상되었고, 무엇보다 고장이 나면 수리점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원격으로 

처치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쓰고 싶은 욕망, 날개를 달다

이동식은 HP 노트북을 갖고 있으니 강연이나 현장취재에 안성마춤이다

집에서는 와이파이로 필요에 따라 워드패드나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에 연결할 수 있다  트윗이나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같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야외에서 갑자기 글감이 떠오르면 

이제 당황할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에 에버노트(Ever note) 앱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 에버노트 앱으로 초고를 쓰고 

저장해두었다가 틈틈이 퇴고도 하고 데스크탑으로 공유하면 PC에 불러와서 언제든지 워드작업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외부 소통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인터넷이 외부와의 소통채널이 되어준다

언론사 사이트, 포탈사이트를 통해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언제든지 작품 발표를 할 수 있어 

능률적이다  현재 네이버(기청시인의 문예통신) 다음 포탈의 블로그(대나무 소리), 

카카오 브런치(니르바나) 미주중앙일보(그래도 매화는 핀다)등에 글을 올리고 있다.

 

옛날 같으면 문예지에 우편으로 원고를 보내는 데 일주일, 잡지 편집에 한두 달, 우편으로 책을 

받아보는데 일주일, 길고긴 인내의 기다림으로 겨우

활자화된 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천신만고의 산통을 치른 뒤에야 맛보는 잠깐의 즐거움, 

하지만 이제 그런 구식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속도도 속도지만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문예지 신문 잡지의 데스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 

그 많은 미디어 중 골라 구걸(?)하기도 적성에 안 맞거니와 대부분 공짜 원고에 길들여진 풍토 앞에 

목마른 글쟁이들은 그야말로 유구무언일 뿐이다.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세상이 되었다

나의 경우, 문예지나 블로그에 발표한 글(시 에세이 문예비평 시사칼럼 등) 이나 미발표 신작을 

실시간으로 독자와 만나는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메일을 통한 온라인 소통방식으로 <<기청 시인의 시사 문예통신>>이 그것, 내년이면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런 방식은 SNS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소통방식이 아닌가 한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 있는 문인, 예술가 교수 문화예술단체 언론인 독자에게 실시간으로 전송된다  

보내고 조금 지나면 해외에서 먼저 답신이 올 때면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세상을 실감하는 것이다.


SNS의 넓고 빠른 바다를 누비다

문인들 중 어떤 이는 아직 손 글씨로 원고지를 쓴다는 분도 있다

문명의 편리함에 따르는 부작용을 경계하는 측면이 있어 그 나름의 의미도 있다  오랜 습관으로 

쌓아온 전통방식은 인내와 절제란 우리 고유의 미덕을 존중한다  하지만 편리성 속도가 주는 경제성 

효율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 ‘대단한 무기’로 무엇을 하였는가?

목마른 갈증을 풀기 위해 겨우 무나 수도 없이 깎아 먹었는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감성의 아귀‘가 된 것은 아닌지,

먹지 않아도 배부른 ‘황금빛 종소리’를 찾아 아직 노을이 물든 들판을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시나 에세이 이슈칼럼 등을 통해 현실에 날선 목소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도 

없었다  세상은 어느 쪽으로 든 구르는 대로 굴러가는 모양이다  

누르는 힘의 세기에 따라서, 내 40여년 글쟁이로 살아온 결실의 가을은 초라하지만 내 영혼의 

배는 부르다

그것으로 나의 펜은 칼보다 강하고 질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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