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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의 개
-비제의 칼멘
기청(시인)
갑자기 안달루시아가 떠올라
안달 안달 하면서 맴돌기만 하다가
문득 안달루시아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거기, 낯선 시골마을 백색의 눈부신
동화 속 집들이 꿈틀대는 바닷가
시계가 녹아내리는 달리의 그림 속으로
안달루시아의 작은 물잔에서
태어났다는 피카소, 그 난해한
시공 속으로 빨려들어가
훌라맹고 빠른 템포에 맞춰
춤추는 정열의 집시
그녀의 치맛속 블랙홀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붉은 눈빛의 투우사
어쩌면 전생의 한때
그녀를 넘보던 안달루시아의 개가
떠도는 집시를 따라
마침내 그녀 가슴속 불타는
정열의 포로가 되어
안달 안달 하면서 맴돌기만 하다가
안달루시아 오, 안달루시아-
-
너는 거기에 있지만
너는 언제나 거기에 있지만
나는 너를 볼 수가 없다
느낄 수가 없다
허공을 떠도는 바람처럼
잠깐 스치고 가는 환영(幻影)처럼
실체를 볼 수가 없다
너는 거기에 있지만
이미 오억 칠천만 년 전 그날 잠깐
내 꿈을 스치던 인연의 조각구름
부처의 얼굴이다가
이마에 뿔이 달린 나찰이다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선으로
유혹의 요염한 눈빛으로 입술로
아. 나는 눈멀고 귀멀어
이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지금 내 곁에 와서 소곤대는
너를 볼 수가 없다
느낄 수가 없다.
출전// 한국시원 2018.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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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메모////
오래전 영화 <칼멘>을 보고 그 이후 다시
비제의 오페라로 보았다
스페인 안달루시아를 배경으로 집시 여인과 투우사의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배신, 그 장렬한 죽음의 서사는
잊혀지지 않는 감동으로 남았다
언젠가 몇 줄 적다가 덮어둔 실마리가 어느 날 환영(幻影)처럼
저절로 풀어져 나갔다 머릿속 잠재의식이 내가 잊어버린 동안에도
중단하질 않고 이어왔나보다
의식의 흐름기법은 다분히 잠재의식의 도움을 받는다
뒤의 <너는 거기에 있지만>도 비슷한 영감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쓴 것이다
한 작품으로 수년을 끙끙거리기도 하고 일시에 마치
누에고치가 실을 뽑듯이 줄줄 풀려나오는 것도 있다
오랜 시작(詩作)의 여정에서 가끔 맛보는
희열이라 할까?
(글 청사-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