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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Sep 09. 2019

추석달을 보며-문정희

다시 읽는 가을 시

[다시 읽는 가을 시]


추석달을 보며-문정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 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 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 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 놓고


나의 추석달은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출전; 시집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미학사, 1992)



//////// 창과 窓 ////////////



중추절이나 한가위 보다 추석(秋夕)이 더 정겨운 것은 왜 일까?

우리 지난날 그저 추석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었다.

배고픈 아이들에겐 풍성한 배부름이었고 어른들에겐 아낌없이 

내어주는 넉넉한 인심이었다.


문정희 시인의 <추석달을 보며>는 그리움과 화해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리움은 어머니의 ‘정한수’(기원)와 ‘송편’(고난의 승화) ‘옥양목’(순수)을 통해 

구체화 된다. 이어서 ‘달’에 와서는 민족 분단의 아픔으로 확대된다.

결미에 와서 달은 다시 ‘백동전‘으로 환한 그리움의 실체가 되어

모든 이의 그리움, 그 불변의 본성을 가슴마다에 빛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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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해마다 추석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젊은 날에는 가족 친지들이 고향집에서 만나는 설렘으로 기다려졌다.  

그런데 그런 설렘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대신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씩 유명(幽明)을 달리하면서 허전함,

그리움이 그 자리를 메워준다. 

올해 여름 끝 자략 큰형님이 가시고 그런 허전함은 더욱 사무쳐온다.

고향 집 뒷산에 누워 계시던 부모님마저 낯선 공원묘원으로 함께 이사 

가시고 이젠 영락없는 ‘심정적 실향민‘이 되었다.

****

계절의 순환은 곧 생명의 순환이다.  눈보라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면 푸른 

새싹들의 봄이 온다.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유년(幼年)을 지나 폭풍이 몰아치는

여름의 번뇌도 청춘도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  어느 듯 사과나무에 붉은 홍옥이

하늘을 물들이는 계절, 오동통 살이 오른 보름달이 담장 너머로 갸우뚱 얼굴을 

내미는 팔월 한가위, 추석은 그렇게 변함없이 우리 곁에 찾아온다.

계절이 언제나 우리를 품듯, 자연이 아낌없이 내어주듯, 우리도 넉넉한 마음으로

가족을 이웃을 사회를 품어 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 

부디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존귀함을 기뻐하는 따뜻한 명절이 되기를--

(글 -청사 시인 문예비평가)-   

    

 

 <문정희 시인 약력>  

                               

    시인 문정희(文貞姬, 1947년 5월 25일 ~ )는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 서울여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역임.

1969년 《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문정희 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수필집 《지상에 머무는 동안》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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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엔 어떤 책을 읽을까?


▶ ▶ 한 줄의 詩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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