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없는아내 Apr 01. 2021

저, 휴직합니다.

잠들지 못하는 3월 30일 새벽

 새벽 3시 30분.

 결국 잠들지 못하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왜? 잠을 자지 못하는 걸까? 잠이 오지 않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생각 꼬리의 시작점은 역시 "다리가 저리다"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침에 입고 나간 바지가 꽉 끼어 불편할 정도로 종아리가 부어 있었다. 오늘 밤은 기어이 종아리가 저려(-이런 느낌이 저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다리가 저린 것도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려나? 왜 생리는 또 하고 있는 거지? 이 생리가 안 멈추면 어떻게 하지? 멈추겠지? 생리는 맞는 거겠지? 호르몬 주사, 약 때문에 이렇게 생리 주기가 꼬이는 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병원에서는 왜 문제없다고 하는 걸까? 진짜 문제가 없으니 없다고 하는 거겠지? 다른 병원으로 옮겨볼까? 그래도 가까운 게 좋을 것 같은데... 병원을 옮기면 뭐가 좀 달라지려나?'


 생각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나지 않는다. 그나마, 휴직을 하기로 해서 정말 다행이다.


-


 당연히, 잘 될 줄 알았던 시험관 시술.

 시험관 시술의 통상적인 성공률이 15%라는데.. 나는 무슨 깡과 믿음으로 한 번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던 걸까? 결국, 나는 세 번의 시험관 시술 실패를 경험했고 휴직을 확정했다.


 '휴직을 하는 게 맞나? 휴직하면 아이가 생기나? 휴직했는데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그냥 회사 다니면서 해볼까? 아니야, 아니야. 휴직하는 게 맞아. 휴직하고 시험관 시술해서 아이가 생기면, 육아휴직까지 2년을 쉬게 되는 건가? 그럼 회사에 복귀가 가능할까?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쯤에서 전업주부가 되는 건가? 일을 하지 않는 삶은 어떤 거지? 돈을 벌지 않는 삶은? 남편 혼자 외벌이 하면 안 부담스러우려나? 괜찮으려나? 2년 쉬고 다시 일로의 복귀는 어렵겠지? 버텨볼까? 아니야. 쉽지 않아. 휴직하는 게 맞아. 아-, 맞나? 맞겠지? 맞아야 하는데....'


 첫 시험관 시술 실패 후, 휴직을 생각했다. 그때에도 생각이란 아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휘젓고 돌아다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건강하다'라는 이유와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첫 시술 실패 후, 두 번째 시술을 바로 이어 진행했다. 첫 시술과는 다르게 12시간을 맞춰 주사도 맞고 질정제도 넣어야 했다. 난자 채취, 냉동 배아 이식 1차, 호르몬 주사와 함께한 약 2달간의 여정에서 힘들거나 버겁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두 번째 시술을 위한 과정은 좀 버거웠다. 아침, 저녁으로 주사를 맞다 보니 배에 파란색 연지곤지를 찍은 것 마냥 멍 들어갔고 호르몬 변화 탓인지 여린 살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12시간'이라는 시간적 제약도 나를 압박해 왔다. 여러모로 회사에 변화가 많은 시기였고, 일이 많았고, 야근을 해야 했다. 어느 날 밤 야근을 하다가 '회사 화장실에서 주사 맞아야 하나?' 생각을 했다. 잠시 후 그 생각이 너무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휴직을 결정했고, 세 번째 실패 후 휴직을 확정했다.


-


 이 짧은(?) 글을 쓰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다 보니 잠이 오지 않는 것 같아 글로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생각이다.


 13년을 쉬지 않고 일했고 상상도 못 했던 '난임'으로 인한 '휴직'이다 보니,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조금씩 생각들을 정리해야겠다. 휴직을 준비하는 과정도, 시술을 진행하는 나의 감정도, 휴직기간을 잘 지내는 방법도.


-


저 휴직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