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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아내 May 09. 2021

'실패'는 두렵지 않아!

휴직 일기 #1

 휴직을 하고 딱 한 달째.

 매일 일기를 쓰듯 브런치에 글을 써보겠다는 나의 의지는 '임시저장'에 머물러 있다. 한 달을 참 야무지게 지냈는데, 머릿속 글들이 파편처럼 나열만 되어 있을 뿐 정리가 되지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SNS용 단문만 쓴 건 아닌지, 남이 써준 글을 컨펌만 한건 아닌지 새삼 반성되는 과거이다.


 한 달 동안, 두 친구의 임신소식을 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니! 왜 임신은 나만 힘든 거야?!" 울분이 터져 나오기도, 약간 우울하기도 했다. 차마 나에게 임신 사실을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한 친구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섭섭하기도 했다. 작년 말, 나는 두 친구에게 시험관 시술을 미리 알렸었고 두 친구는 나의 임신을 응원해주었다.


 한 친구는 내가 자꾸 꿈에 나온다며 나에 대한 길몽인 것 같다고 해, 내가 돈을 주고 꿈을 산 상태였다. 꿈은 내가 샀는데, 친구가 임신을 하다니..... 내가 친구의 태몽인 건가?!(나 같은 딸 낳으면 안 되는데, 이것도 걱정이다. 아! 들! 기! 원!). 또 다른 친구는 38세(그러니깐- 작년, 2020년)의 연말에 만나 "야! 내년엔 아이를 낳아야 해! 40세에 애 낳을 거야? 빨리 병원 가서 검사라도 받아 봐!" 내가 나서서 엄청 뽐뿌를 넣은 상태였다. 올해 연초까지만 해도 그 친구는 3월까지 자연임신을 위해 노력해 보고 잘 안되면 시험관 시술을 한다고 했는데, 실제 자연임신에 성공해 '임산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오지랖-, 오지랖-, 한 치 앞을 못 보고 누가 누굴 훈계(?) 한 건지...


 두 친구의 임신을 참으로 축하한다. 나에게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상황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금은 미안하고 섭섭도 하지만, 차마 말하지 못한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뭐, 나도 성공해서 임산부 선배들에게 조언도 듣고 용품도 물려받아야지.....ㅎ, 혼자 계획을 세워본다.




-시험관 시술에 3번 실패해서... 휴직했어...

"에이, 실패라고 이야기는 하지 말자~...."

휴직의 사유를 듣던 친구는 시험관 시술 '실패'를 '실패'로 부르지 말자고 했다.


 '그런가? 실패라는 단어는 너무 부정적인가? 뭐라고 부르면 좋으려나?' 친구는 무심코 던진 말이겠지만, 나는 '실패'라는 단어 대신 무엇이 좋을지 부단히 고민해 보았다. 한 때, 스스로 PT용 카피 좀 쓴다고 생각했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단어는 없었다.


 뭐, 실패라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는 Dog소리고....

 대한민국의 위대한 예비 임산부 네티즌들이 혹시 다른 단어로 이야기 하나 검색도 해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러다 집어 든 책이 김소연 작가의 '시옷의 세계'이다. 한 때 진심으로 좋아하는 책이었는데, 기억의 저편으로 잊혀 있었다. 김소연 작가의 '실패'에 대해 뭐라고 썼었지? 쓰여있긴 했었나?


실패에 관해서 일종의 희열을 느꼈다. 실패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쉼 없이 새로운 이유들이 발명되었고,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성공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유가 가지런했고, 불편했고, 단조로웠다. 우리는 다양한 근거를 거느린 실패의 미학성에 깊이 매료됐다.

-시옷의 세계, 김소연-


 나는 실패를 실패로 부르기로 했다. 딱히 다른 대안도 떠오르지 않았고, 다른 단어로 부른다고 '실패'가 '실패'가 아닌 것도 아니니깐-.


 '착상'은 어느 의사도 해줄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 한다. 가장 건강한 정자 한 마리가 온갖 역경을 겪어 난자를 만드는 단계는 의학이 해결해줄 수 있지만, 수정란이 몸이 안착해 건강히 자라는 과정은 온전히 '인간의 몫'인 것이다.  시험과 시술의 실패에 '일종의 희열'을 느낄 만큼 마음이 열려 있지는 않지만, 실패의 이유를 하나, 둘.. 찾아본다. '커피를 마시지 말아라. 밀가루 섭취를 줄여라. 운동을 해라' 다양한 조언이 있지만, 시험관 시술 실패의 이유는 단 하나다. '건강한 아이를 갖기 위한 과정'. 수억 마리의 정자 중, 단 한 아이만이 난자를 만나 수정란이 될 수 있는 건데, 그 과정을 인간이, 과학이, 의학이 대신해주는 것 아닌가?  그러니 착상은 더욱더 신중하겠지. 그게 자연의 섭리이겠지. 건강한 아이를 만나기 위해 내 몸은 더욱 신중한 착상을 하는 중일 테고, 나는 건강한 착상을 위해 몸을 좀 더 건강히 만들어 둬야 할 것 같다.


 내일(2021년 5월 10일), 두 번째 난자 채취가 진행된다. 이번엔 과배란이 아니길-, 건강 난자들이 채취되길. 기원해 본다. 그 뒤 과정도 많이 남아 있지만... 일단 첫 단계부터 무리 없이 잘 성공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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