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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Aug 17. 2021

먹고사니즘: 잘 지나가게 하는 것

에세이_하루 한 장 드로잉

방 혹은 집  /   판화_Line etching   /   심희진_소소



 누군가 먹고사니즘에 대해서 물었다.

먹고사는 일에 관하여 질문을 받는 것이 처음이었다. 나에게 먹고사는 것은 숨 쉬는 것을 자각할 수 없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가치를 쫒은 것이 아니라 눈앞에 해야 할 것들, 해내야 할 것들을 순차적으로 밟아나가며 지금에 이르렀다.


 예전에는 참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보면 쓸모없이 확대된 고민인 데다가 그저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었는데 당시에는 퍽 심각했다. 도대체 왜 심각했던 건지 기억이 안 나는 일들도 많을 것이다. 10-20대는 정신도 마음도 덜 자랐는지 모든 것이 말랑거려서 이리저리 휩쓸리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삶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지나갔고 잊혔고 견뎌냈다.

 그때 경험했던 상처가 다 나아 굳은살이 생긴 지금 이전보다 마음에 타격을 받는 일이 줄어들었다. 타인에게 거는 기대와 이해받길 바라는 마음 또한 현저히 줄었다. 이전보다 새로울 것도, 화를 낼 것도, 속상할 것도 없었다. 그냥 너는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알아서 잘 살고, 너의 그 어지러운 이야기에 나는 빼줘. 거의 그뿐이다. 내 삶을 더 이상 쓸모없는 소모전에 사용하기도 싫을뿐더러 좋은 사람, 좋은 것들만 느끼며 살기에도 시간을 쪼개야 했고 언제나 빠듯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기에 제일 깊게 고민하는 것은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한정된 내 하루를 채우며 보낼 수 있을까이다. 나를 잘 살찌우고 건강하게 보듬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사는 삶에서 작은 네모 대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로 결정한 뒤 출퇴근 시간에 틈틈이 책을 읽고 퇴근하고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주말에는 글을 썼다. 시간을 가치 있게 쓰려고 노력하니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과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저절로 정리되었고 바라는 나의 모습도 생겼다. 가치관은 변하니 시간이 지나면 다른 모습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현재의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 볼 생각이다.


  또 다른 의미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은 지나갔지만 어떤 것은 그냥 외면한 채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밀린 숙제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정말 모든 것은 지나간다. 누군가 나에게 인생을 한 줄로 정리하라 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지나감'을 잘 지나가게 하기 위한 노력 또한 필요했다는 걸 느낀다. 방치가 아닌 잘 지나가기 위해서. 잘 지나옴이 쌓여 다시 잘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영원한 슬픔도 영원한 기쁨도 없다. 슬픈 일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매만져주고 기쁜 일은 그 순간에 흠뻑 취하며 감정을 남김없이 즐겨볼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일단 하루하루 잘 먹고 잘 살아볼 것이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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