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하루 한 장 드로잉
나는 여름이 좋다.
여름이 진한 초록색으로 뒤덮이는 것이 좋다. 예전에 누군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름의 녹색은 너무 과한 것 같아. 나는 라임과 연두가 섞인 봄의 색이 좋아.”
그가 말했던 라임과 연둣빛은 아마 새로운 시작과 출발을 의미하는 연한 싱그러움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엄청나게 반기를 들었었다. 진초록색으로 얽혀있는 그 과한 여름이 매력적인 건데 그걸 왜 모르냐 바보야라고 말이다.
여름에는 정말 모든 것들이 과하게 피어난다. 나뭇잎도 꽃들도 햇빛도 자신의 존재를 경쟁이라도 하는 듯 엄청난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 가운데 서서 풍경들을 바라볼 때면 그 과도한 존재감이 눈으로, 귀로,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참 좋다. 또한 나는 여름에 쏟아지는 소나기나 장마도 좋아하는데 모든 걸 씻어버릴 듯 대차게 내리는 빗줄기 소리는 보고 있지 않아도 내 눈 안으로 비 내리는 한여름의 풍경을 끌고 와 준다.
내가 여름에 특히 좋아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건 전 동네에 있던 두 그루의 나무였다. 그 동네는 3층 이하의 주택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주택단지였는데 골목 초입 양쪽에 큰 나무 두 그루가 서있었다. 나무들은 크기가 커서 잎사귀가 자라나는 여름이 되면 나무 윗부분이 동그랗게 맞닿아 마치 터널처럼 보이기도 아치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그 나무들을 혼자 나무문이라 이름 짓고 늦은 봄부터 한여름을 지나 늦은 가을까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나무문을 통과한다고 생각했었다.
아침에 멀리서부터 나무문을 바라보면서 그 밑으로 걸어가며 보는 나무의 모습은 말 그대로 참 예뻤다. 나무가 맞닿은 윗부분의 잎사귀들은 아침 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렸는데 보고 있으면 피아노 선율이 떠오르곤 했다. 맑은음으로 잔잔하게 흔들리는 피아노 운율이 보고 있기만 해도 귀로 들려왔다. 그 나무문을 그렇게 좋아한 것에는 혼자 몰래 이름을 지어줄 때 생긴 애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무언가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만으로도 이전과는 다른 관계가 형성되곤 했으니까. 나무문을 지날 때는 평범한 주택가가 아닌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까지 받아 특히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 작은 위안이 되었다. 너의 삶은 나름대로의 특별함이 있어, 하루에는 작지만 아름다운 순간은 반드시 있어, 같은 조금은 진부하지만 소중한 한마디를 건네받곤 했었다.
이제는 이사를 와 그 나무문과는 이별했지만 여전히 여름은 남았고 고맙게도 때가 되면 꾸준히 다시 돌아와 주었다. 쓸쓸한 겨울 뒤에 봄이 오면 나도 모르는 새에 과하고 뜨겁게 말이다. 지옥불 같은 더위와 미친듯한 습도는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생명력으로 가득 찬 이 여름이 좋다. 이 여름 안에서 나도 뜨겁고 지나치게 생기 있는 존재로 지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