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여는 글
모두들 하나쯤은 낯이 익을걸.
모두들 한 번쯤은 인사했을걸.
너의 왼쪽 손을 하염없이 잡고 있는 그 아이와 말이야.
아이는 자기가 담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다시 너에게 상기시키지 못해.
왜냐하면 그 아이는 너무나 서툴고 어리숙하거든.
심지어 다시 관심받는 법도, 말을 건네는 방법도 잊어버렸데.
그러니 너는 길을 걷다가, 아침을 먹다가, 책을 읽다가, 잠들기 전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 아이와 마주 앉아야 해.
거창한 건 필요하지 않아. 작은 의자 2개. 그거면 충분해
그 아이의 목소리로 들어봐.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이야기들을 말이야.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왜 아스파라거스를 싫어하게 된 건지,
어째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해바라기를 바라보는지,
왜 CD 플레이어를 보면 마음이 저며오는지.
그 애가 하는 너무나 사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줘야 해.
그 애가 뱉는 말과 말 가로 사이에 숨겨져 있는 마음을 알아채 줘야 해.
하찮은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야.
사실은 네가 무심코 털어버린 티끌들이 쌓여서 우주가 된 거거든.
정말 그게 다거든.
네가 그 아이 손을 잡아준 게 아니야. 그 아이가 네 손을 놓지 않은 거지.
끊임없이 잊어버리다가 끝내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러니 오늘은 작은 의자 앞에 마주 앉아 말을 건네보도록 해.
안녕. 오랜만이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