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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Nov 17. 2023

나도 카공족이 되고 싶다.

아직 오픈 전이로구나.

  토요일 아침 8시. 댓바람부터 갠신히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머리에는 벌써 겨울 모자를 썼다. 11월초이건만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1도였다.  

    

  새벽 4시부터 남편은 서울로 일이 있어 출발했다. 남편은, 아침잠이 많아 누군가 깨워주지 않으면 못 일어나는 나와는 다른 인간 군상이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 8시 반이면 시작되는 둘째 아이의 수영 수업을 위해 오늘은 내가 데타로 라이딩을 해주어야 할 판이었다. 그것도 뚜벅이인 내가 말이다.    

  

  괜찮다. 뚜벅이에게는 콜택시라는 치트키가 있다. 몇 주 전, 오후 7시에 시작되는 첫째 아이의 고입 입시 연합 설명회를 위해 저녁 6시 반에 택시를 잡다가 속이 타들어 가는 줄 알았더랬다. 차를 타고 가면 10분 거리인데 그 날 따라 남편은 당직이었다. 당연히 콜택시가 잡힐 줄 알고 전화를 걸며 아파트 문을 나섰는데 웬걸...20분동안 콜택시는 당췌 차를 보내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시간은 피크타임이었다. 저녁 약속, 술 약속을 위해 택시를 잡는 사람들이 그 시간에 폭주한단다. 충남의 이 작은 소도시에 나몰래 그런일이 돌아가고 있었구나. 내가 참 세상을 몰랐네 하며 허탈한 혼잣말을 내뱉는다.   

   

  아무튼 겨우 시작 시간 10분이 넘어 설명회를 하는 대강당 안에 들어가고 있는데, 천만 다행으로 딸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의 설명회가 막 시작되고 있는 듯 했다. 학교 전경 사진을 파워포인트에 사진으로 띄워주는 거 보니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다는 뜻이다. (자기합리화)

 

  오늘 아침도 그런 일이 있을까봐 미리 다른 콜택시 번호도 하나 더 따두었더랬다. 이런 주도면밀함이란! 그 속터지던 날 내가 하도 콜택시 번호에 전화를 해 제끼니까 상담원 여직원이 여기에도 한번 전화를 해보라며 타회사 콜택시 번호를 나직히 불러주었다. (여자들의 센스란)

     

‘세상에나. 콜택시 회사가 더 있었어? 나 이 도시에 무려 15년을 살았는데 나만 몰랐?!어?’   

  

  하지만 인생이란 가장 늦을 때가 가장 빠른 법. 그래서 오늘은 두 군데나 전화를 넣을 수 있는 정보 부자가 된 채로 집을 나선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걱정했지만 콜택시는 아주 쉽게 잡혔다. 택시를 타고 아이를 가뿐히 내려준 다음 근처 카페에 가서 따뜻한 음료라도 한 잔 마시며 허기진 배를 달래며 글 한 꼭지를 읽고, 영감을 좀 받아보려 했었다. 그랬었다.     


  나는 평소 카페를 잘 가지 않는다. 카페에 가면 밥 값과 맞먹는 금액이 나온다. 그리고 십 수년간 다이어터를 넘어 프로 유지어터로 살아가고자(?) 하는 나에게 음료로 살을 찌운다는 건 너무 뼈아픈 일이었다. 하여 남편이 가자고 하는 날 외에는 카페에 나 혼자 가는 일이란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카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렇다. 카페는 그리 꼭두새벽에는 문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라면 모를까. 인구 20만이 채 안 되는 이 충남의 소도시에는 온통 카페가 10시에 문을 연다고 친절히 또박또박 써 놓은 것이었다.      


“햐...”     


  의미없는 긴 한숨을 내뱉고 있는데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오르며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그래~나에게는 다이소가 있었지?’  

   

  대도시에 백화점이 있다면, 내가 사는 이 작은 도시에는 다이소가 핫플이다. 3층까지 전층이 다이소의 여러 가지 잡다한 물건들로 빼곡이 차 있는 그 곳. 아이들의 핫플이며 어른들의 핫플이기도 해 갈때마다 주차난(?)이 벌어지는 그곳 말이다.  

    

  신나서 다이소로 걷듯 뛰듯 바쁘게 걸어가 본다.      


  아뿔싸. 나의 다이소 마저 나를 배신하다니. 10시에 오픈이란다. 이제 깨끗이 나의 패배를 인정하고 동네를 걷기로 한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 동네의 거리를 걸어본다. 비록 카공족은 못되었지만 부지런한 방락객은 되어보자며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다. 오밀조밀 작은 가게들, 가을이라고 예쁘게 피어있는 국화 꽃, 부지런히 아침부터 움직이는 마트의 직원들이 길 사이 사이로 보인다. 뿌옇게 흐리지만 하늘도 저만치 보인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오늘 읽으려던 책을 꺼내 가만가만 읽어본다.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본다.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잠시 행복을 온 몸으로 느껴보는 아침이다.



* 카공족: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

* 갠신히: 간신히의 충청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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