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기운에 단잠을 자고 있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방송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파트 점검으로 두 집에 한 집꼴로 정전 중이니 놀라지 말란다. 언젠가부터 관리 사무소 아저씨가 아닌 AI 목소리로 방송하는게 왠지 모르게 귀에 거슬렸는데, 자연스런 인간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나오니 그리 반갑지 않은 내용인데도 꽤 나쁘지 않게 들렸다.
반반의 확률이다. 과연 우리집은 어떤 집에 해당될까. 조심스레 스탠드의 손잡이를 슬며시 당겨본다.
아차차.
우리집도 정전 당첨이다.
이런. 변기 물이 나오는지 화장실에 가서 일부러(?) 볼일을 본 후 물을 슬며시 내려 본다. 다행히 변기 물은 잘 내려간다. 세면대의 물도 잘 나온다. 남들이 얼핏 생각하면 ‘전기와 물이 무슨 상관이야?’ 할 테지만 내가 이렇게 된 데는 밀레니엄이 한 몫 했다.
때는 바야흐로 20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벌써 23년 전 이야기이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그때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고 세상은 뭔가 다른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약간 들뜬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곧 여러 가지 걱정들로 여론이 들썩였다. 컴퓨터가 연도의 첫 자리가 1이 아닌 2를 인식 하지 못하면 전기가 끊긴다드니, 전기는 아무것도 아니며 집집마다 변기가 작동이 안 될 수도 있고 그러면 그건 더 큰 재앙이 될 거라느니 말이다. 신문에 기사가 날 정도였으니 그저 넘길 궤변 따위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지금 들으면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 걱정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1999년 12월 31일에서 2000년 1월 1일로 바뀌는 거지만 세상은 완전히 다르게 변할 것만 같은, 그것도 무시무시하게 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걱정이 뒤섞인 뒤숭숭한 연말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임용고시에서 수석을 한, 참으로 창의적인 내 친구는 그 때 주식을 샀더랜다. 사람들이 밀레니엄을 맞아 축하하는 들뜬 분위기가 될 테니 맥주 주식을 사두면 오를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놀랍게도 맥주 주식은 빨간색 화살표를 우상향해서 친구에게 꽤 두둑한 보상을 남겨주었다고.
생각해보면 인생에 걱정이 없을 순 없겠지만, 걱정한다고 문제가, 인생이 해결된다면 걱정만 하고 살 일이겠다. 때로 걱정은 준비하고 대비하게 만들지만 걱정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절로 술술 풀리지는 않는 법이다.
어릴 때부터 유독 걱정이 많고 소심했던 나는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실까봐, 그래서 엄마가 우리 삼남매를 두고 집에 나갈까봐 걱정했다. 걱정이 많으니 밤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게 도와주시고, 엄마가 지치지 않게 지켜 돌봐주세요.’
매일 밤의 기도는 잠들기 전 나만의 아주 경건한 리추얼이었다. 매일 밤 비슷한 내용의 기도였지만 간절히 기도를 드렸더랬다. 어쩌면 걱정이 안겨준 선물은 간절한 기도를 통한 신앙심이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근육성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게 되셨더랬다. 그러나 매일의 그 기도 덕분이었는지, 우리 삼남매와 엄마를 홀로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으셨던지, 아빠는 그 이후로도 오래 살아내 주셨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는 우리 곁을 지켜주었다.
갑자기 집에 스탠드 불이 환하게 켜진다. 정전이 끝났나보다. 오늘 아침 따라 웬 일인지 노트북을 충전해두고 싶더라니만. 잠깐의 정전 덕분에 오래전 잊어버리고 있던 밀레니엄도 떠올리고 썩 나쁘지 않은 하루다.
방송이 다시 흘러나온다. 다행히 정전이 끝났단다. 그런데 웬걸. 다시 예전의 AI의 차가운 여자 목소리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조금은 틀리더라도 아날로그가 여전히 좋은 나는, 아직도 밀레니엄에 좀 더 적응이 필요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