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빵지순례

빵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by 소소러브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당연한 수순인 듯 빵지순례를 시작했다. 남편은 저녁 먹으러 나가기 전에 숙소 근처의 양재동 일대에 있는 베이커리 맛집을 미리 검색해 두었다. 한곳은 사진의 근사한 모습과는 달리 먹을 만한 빵이 별로 없었다. 아기 주먹 만한 빵들 몇 개만 예쁜 데코레이션 접시에 층층이 놓여있었다.


두 번째로 간 빵집은 첫 번째 가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먼저 아기 엉덩이처럼 보드라워 보이는 우유 식빵에 눈이 갔다. 정말 맛있는 빵집은 기본 빵이 맛있다는 걸 빵순이 인생 40년만에 터득했다. 기본에 충실해 보이는 치아바타도 하나 샀다. 집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일은 잘 없지만 맛있는 치아바타라면 상추에 토마토, 치즈만 넣어도 맛있을 터였다. 남편은 크림치즈가 콕콕 박힌 통밀빵을 샀다. 오십살이 넘어가더니 쳐다도 안보던 뻑뻑한 통밀빵을 먹기 시작했다. 늘 초코케잌에 초코빵만 달고 살던 남자가 반전도 이런 대 반전이 없다.

서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식빵 봉지먼저 조심 조심 열어본다. 역시 눈은 손보다 빠르다. 내가 여지껏 먹어본적 없는 극강의 부드러움이다. 식빵을 좋아해서 15년 전에 제빵기를 사서 수십번 구워먹어보았지만 처음 만들때만 부드러울 뿐 하루만 지나도 식빵은 겉이 돌덩이처럼 단단해졌다. 늘 반쯤 먹고 버리는 식빵이 아까워서 어느순간 식빵 만들기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문제는 동네마다 있는 프렌차이즈 베이커리 빵은 이제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공장식 빵처럼 너무 대량화 공장화 된 빵에서는 이상하게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릴 때 동네마다 있던 빵집은 빵집 고유의 맛과 종류들로 눈과 입을 즐겁게 했더랬다. 왠만하면 어느 빵집을 가도 별다른 실패가 없었다. 그런데 제과점도 대기업화의 길을 피하지 못하더니 어느새 빵 맛이 일률적으로 변해갔다. 어느 동네를 가도 똑같은 프렌차이즈의 빵만 있는 건 빵순이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어느순간 대기업 빵집의 빵들은 물려서 못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덕분에 식사를 좀 더 충실히 하게 되고 간식을 끊게 되는 장점이 있지만 그건 빵순이에게 너무 혹독한 일이다. 유튜브를 보며 금손을 가진 여인네들의 레시피를 따라 적으며 때론 따라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태생이 손이 부지런하지 못한지라 그것도 한두번으로 끝이 났다.


골목길 순례를 좋아한다. 아마 어릴 때 골목 골목 속에 들어선 양옥집에 살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보통 골목길 끝에는 막혀 있고 그 골목 안에서 동네 아이들과 배드민턴도 치고 소꿉놀이도 하고 놀았다. 일하러 가지 않았던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다가 집에 들어가 핫케익이라도 구워와 이름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먹으라며 나눠주곤 했다. 우리 엄마가 일하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건 그 폭신폭신 보드라운, 카스테라 같은 핫케잌 때문이기도 했다.

음식은 단지 입안에서 맴도는 그것만은 아니다. 음식은 기억을 소환하고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어릴 때는 엄마가 해주던 나물 반찬이 그렇게도 먹기 싫더니,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엄마가 고들빼기라도 보내주는 날엔 집나간 입맛도 다시 집을 찾아온다. 왜 음식이란건 남이 만들어주는 게 제일 맛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먹을 이를 생각하며 마음과 정성을 담뿍 담아서겠지.

보드라운 식빵에 절대 실패가 없다는 복음자리 딸기잼을 발라 먹으며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기본기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사춘기 아이들 키운다고 나도 같이 목소리 세우며 악다구니 쓰는 여자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갱년기 증상으로 소리에 민감해져, 그 좋던 남편 목소리도 귀에 거슬릴 때가 꽤 많다.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남편에게 좀 더 보드라운 여자가 되어 주어야지’ 하고 말이다.


매일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면, ‘내 삶의 기본’에 충실해 보자 다짐한다. 글쓰기 선생님 말씀처럼 글이나 쓴다고 가족들에게 짜증이나 내는 예민한 사람은 되지 말자고. 극강의 부드러움을 지닌 촉촉한 우유식빵 처럼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보드라운 사람이 되어보자고 생각하며 빵을 한 입 더 크게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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