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도 잘 안하는 내가 사실은 '관종'이었다니

유부녀이자 경단녀의 인정욕구

by 소소러브

글쓰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욕망을 가지세요.”


“욕망이 있어야 글을 씁니다. 글이 써집니다. 소망을 가지고 욕망을 가지고 내 안에 있는 수많은 고민과 욕망, 오르지 못할 것들을 꿈꾸며 글을 써 제끼세요!”


선생님의 외침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아... 나는 딱히 욕구가 없는데...’

‘물욕, 소유욕, 명예욕. 그 중 어느 것도 딱히 없는데...’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내 안의 욕망을 오랫동안 부인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진짜 원했는데 못 가졌다고 하면 쪽팔릴까봐, 얼굴이 안 설까봐 내 안에 그런 욕구는 없다고 내가 먼저 그 싹을 애초에 잘라 버린 거였다.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면서, 재능도 위트도 글감도 좋은 동기들을 보며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역시 타고난 재능에는 노력이 당할 수가 없구나' 하고 말이다. 흑수저가 금수저를 만나 좌절하는 기분이었다. 동기들의 글이 브런치와 다음 메인에 올라갔다는 소식이 단톡방에서 들려올 때면 매번 속으론 태연한척 했지만, 나는 그런거 하등 상관 없는 척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던 거다. 내 안의 욕망이 사실은 무진장 꿈틀대며 용트림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저 여기 있어요. 여기! 저 안보이시나요?’ 하고 말이다.

그렇다. 그것은 존재감의 문제였다.

여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내려 놓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자기 자신을 자꾸만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갉어먹기까지 한다.

‘내가 할 줄 아는게 뭐가 있겠어?’


‘그럼 그렇지, 내가 그렇지 뭐.’


자존감이 그리 낮은 편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도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사소한 일에도 뭔가 피드백이 좋지 않으면 나 자신을 탓했다. 사실은 그럴 일이 아니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내 에너지를 타인에게 바닥까지 내주고 살아왔지 않은가. 우리는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었다. 때로는 뭔가 부당한 요구에는 ‘No’라고 선언할 수도 있어야 했다. 필요하거나 합당한 경우에는 요구도 할 수도 있어야 했다.


'유부녀' 와 ‘경단녀’로 살면서 그 이름표와 여러 상황속에서 트렌드에서 좀 밀리고, 업무의 탄력에서 좀 밀려도 나 스스로를 그렇게 낭떠러지로 내몰 일은 아니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충분히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이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잠시 쓴 적이 있었더랬는데, 내 안에는 이미 인정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그득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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