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에 직장을 잡으면서 첫 월급으로 나를 위해 한 첫 번째 일은 책상을 사는 일이었다. 책장과 연결되고 컴퓨터까지 놓을수 있는 커다란 책상. 동네 대형마트의 가구점을 지나가다 단숨에 내 마음을 빼앗아 버린 그 아이를 나는 첫 월급과 맞바꾸었다.
결혼전 6년 반을 데리고 살았던 그 책상을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시집을 가면서도 데리고 갔더랬다. 하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아이를 갖게 되면서 그 책상에 앉을 일이란 거의 없었다. 서재라고 방 하나를 꾸며 놓았지만 그 방은 그저 내가 읽던 책을 꽂아놓은 장소일 뿐. 더러는 남편의 쉼터일 뿐. 때로는 등받이가 긴 컴퓨터용 의자에 앉아 젖먹이 아이를 배 위에 올려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재우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읽거나 쓰는 일은 말 그대로 사치였다.
24평의 첫 신혼집에서 35평집으로 넓혀서 이사를 하면서 나는 이 책상마저 처분해버렸다. 중고시장에 팔거나 당근마켓에 내놓지도 않았다.(아 참 그 시절에는 당근도 없었지!) 그야말로 나는 애지중지하던 내 책상을 무참히도 버려버린 것이었다. 새집으로 이사하며 10평정도가 늘었지만 아이들이 큰 만큼 짐의 양도 크기도 늘어버렸다. 내 물건이라곤 내 화장대와 옷가지 정도가 전부였다. 그 많던 책도 이사하며, 새로운 집 주인에게 무상으로?! 양도했다.
매일 아침 루틴인 아침운동이 그날 따라 늦어졌다. 아침에 아이들 챙겨 학교를 보낸 후 급한 집안일을 마무리 한 다음 늦어도 9시 반에는 나가는데 무려 10시가 넘어 있었다. 오늘은 그냥 운동을 하루 재낄까 잠시 고민하다 어느새 꾸역꾸역 추리닝에 몸을 구겨 넣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운동은 운동화를 신고 집 밖을 나서기만 하면 90퍼센트는 성공이다. 역시나 즐거운 자전거 라이딩이었다. 가을을 담뿍 눈에 담고 몸으로 느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몸도 상쾌 마음도 상쾌 절로 콧노래가 나오려던 순간, 저 멀리서 한쌍의 남녀가 낑낑대며 나무로 된 무언가를 옮기는 것이 보였다. 자전거로 가까이 다가가며 나도 모르게 유심히 그 물건이 무엇인지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책상, 책상이었다. 그것도 원목으로 된 흠집하나 없는 깨끗한 아이였다. 디자인도 심플한 것이 저것이 과연 책상일까 화장대일까 할 정도로 네모 반듯한 틀에 서랍이 두 개만 달린 구조였다. 나무 색깔도 너무 가볍지 않은 오크색이었다. 서랍의 손잡이도 클래식하면서 단정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처음 보는 그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 책상 버리시나 봐요?”
"네~~"
“ 몇 년이나 쓰셨어요?”
"아마 십년쯤이요?"
“제가 수술한지 오래되지 않아 혼자 옮기긴 어려운데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놀랍게도 그 부부는 자신들도 책상을 가지고 나오면서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며 나왔는데, 진짜 물건의 임자를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갑고 고맙다고 했다. (대형 폐기물 스티커도 붙이지 않은 상태였다.) 부부는 이 책상을 우리집 안방의 빈 공간에 살포시 놓아주고 갔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세상에나. 신랑이 집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근데,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by 영탁 ) 원래 남편이 그 시간에 집이 있는 일이란 일년에 한번도 안되는 일이었다. 남편은 그날 따라 무슨 서류를 가지러 잠시 집에 들렀다가 난데없이 두 남녀가 낑낑대며 책상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며 그들 몰래 나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그 순간이 너무 겸연쩍어 사회생활용 억지 미소를 부부에게 날리며 연신 "감사합니다~~감사하여요"하며 목소리를 높여댔다.
“안 그래도 집에 물건이고 짐이고 많아서 다 버려야 할 판인데, 또 남이 쓰던 물건을 들여 놓으면 어떻게 해?”
“나도 내 책상이 필요해! 그런 생각한지 꽤 오래되었는데 나한테 큰 돈 쓸 여력이 없어서 그동안 꾹꾹 눌러왔다구. 마침 누가 버리는 책상을 구해왔고 직접 집까지 갖다주셨는데 그렇게 화 낼 일이야?”
10여분간의 냉랭함과 다툼속에 남편은 책상 위 유리판을 쓸 것인지, 책상 위의 책장은 쓸것인지 내게 물어왔다. 조금은 기가 산?! 내가, 관리 사무소에서 대형 폐기물 스티커를 사다준다면 그 두 개는 쿨하게 버리겠노라고 말했다. 다행히 남편은 순순히 스티커 두 개를 사왔고 조용히 쓰레기장으로 내려가주었다.
새로 우리집에서 만나게 된 나만의 책상을 걸레로 훔치며 이 책상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지 슬쩍슬쩍 생각해 보았다.
“책도 읽고, 노트북을 갖다 놓고 글도 써야지.”
그리고 그 생각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지금 그 오크색 레트로 책상위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과도 물건과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 나는 함부로 그 인연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이 책상이 누군가의 손을 탄 오래된 물건이라는 점은 나에게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오랫동안 내 책상의 부재함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이 책상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10여년만에 장만한 나만의 책상. 이 책상과 함께 오랫동안 좋은 일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내 삶을 녹여낸 글을 쓰며 조금은 새롭고도 생산적인 삶으로 거듭나고 싶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또 다른 나를 만들어 갈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