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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돋을 새 '날'을 위하여

그림책 <무릎딱지>를 읽고.

by 소소러브

쇼파도 쿠션도 배경도 온통 빨간색으로 가득 칠해진 표지에 한 아이가 보이고 아이는 '피가난 무릎의 상처'를 무심히 내려다 보고 있다. 아이는 어디서 넘어진걸까. 피가난 무릎이 아픈걸까 아니면 마음이 아픈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잠시. 표지를 넘기자 마자 만난 첫 문장은 너무 무시무시해서 아찔하다. 무려 사십대이고 아직 엄마가 살아있는 나에게 조차 말이다.

‘엄마가 죽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선언적이고도 단도직입적인 문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릎딱지’라는 그림책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인간에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은 그 무엇이다. 아마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살면서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론 어린 아이조차 그런 순간을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도치 않게 맞닥뜨려야 한다.

아이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부정도 하고 원망도 하다가 이제는 그냥 일상이 짜증이 난다. 아빠가 아침에 먹으라며 준 식빵에 늘 엄마가 해주었던 꿀이 지그재그로 발라져 있지 않은 것도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가 없으니 내가 아빠를 돌봐야 한다고 어른스럽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엄마는 어제 죽었지만 나는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으므로 엄마는 오늘 죽은 것이다. 적어도 아이에게는 말이다. 엄마가 없는 삶이란 아이에게 하나의 우주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 일 게다. 나는 아빠의 죽음을 대학생 때 맞았는데도 꽤 오랫동안 심리적 방황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는 아직 아빠에게 물어볼 말도, 건넬 말도, 못한 말도 온통 투성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아빠가 떠나다니...'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갑작스런 죽음만은 아니었다. 아빠는 22년간의 투병생활을 뒤로 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이 닥치는 날, 죽음이 갑자기 문턱을 넘는 그 하루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아빠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마당에서 놀던 아이는 넘어졌다가 무릎이 까졌다. 무릎이 까지자 피가 흘렀고, 괜찮다는, 너는 이겨낼 수 있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를 또 듣고 싶어서 상처에 딱지가 앉으면 다시 그 딱지를 떼어내고 피가 나게 만들었다. 그러면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아이의 상처에 새 살이 돋을 수 있을까? 아이는 엄마 없이 다시금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다. 너무 슬퍼서 다음 책장을 넘기기가 조금은 힘이 들었다. 4학년짜리 남자아이인 아들에게 이 책을 읽어 주었더랬는데 아들은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무릎에 난 딱지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새살이 돋은 것을 아이는 우연히 발견한다. 엄마의 냄새를 붙들려고 창문조차 열지 않던 아이는 외할머니로부터 엄마는 가슴 가운데 오목한 곳에 언제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곤 그날 밤 두 손을 모아 가슴 가운데에 올려둔 채 잠이 오길 기다렸다. 심장이 조용히 편안하게 뛰었다. 그리곤 오랜만에 푹 잠이 들었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 자고 싶지 조차 않다던 아이는 이제 이전처럼 잘 잠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간간히 엄마 생각에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날을 잘 견디기 위해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을 또 강구해 내야 할 것이고, 강구해 낼 것이다. 그리고 엄마 없이도 사는 삶에 조금씩 더 적응해 나갈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꼭 살아있어야만 대화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아이도 언젠가 내 나이의 언저리 즈음 되면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과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지금 함께 공유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모든 시간과 공간속에 소환해 올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아이는 또 한 뼘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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