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는 삶 속에서

by 소소러브

한동안 꽤 쓰던 삶에서, 그저 살아내는 것만도 힘들어 쓰지 못하는 삶이 이어졌다. 삶에 너무 여유가 없다보니 쓰고 싶은 욕구 자체가 없었다. 그저 살아내는 데 집중해야 했다.


쓰지 않는 삶도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글로도 삶으로도 존경하는 박완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 오히려 작가 생활을 길게 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로 살다가 가고 싶다고. 쓰지 않는 시간이 길었기에 늘 가슴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쌓여있었고, 쓸거리가 없어 고민해본적은 없었다고. 그게 작가로서는 큰 재산이었다고 말이다.


삶이 충만하고 아름답다면 쓰지 않는 삶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나 자신의 삶을 어느 방식으로든 기록으로 남겨두고픈 욕심은 생긴다. 그것이 사진이든, 일기이든, 에세이든 말이다. 그냥 sns에 짧막하게 사진이나 글로 자신의 단상을 남겨두는 것도 뒤돌아보면 꽤 의미있는 작업이 되기도 한다.


'아, 내가 작년 이맘때쯤에 이런 일들을 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좋은 일이 있었구나. 이런 일들로 힘들어했구나.' 하고 말이다.


엄마 간병으로 힘들 즈음, 좋아하는 소설가가 sns에 글을 올렸더랬다. 아내가 뇌종양의 하나인 '교모세포종'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고. 그동안 아내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아내의 도움 없이 혼자서 살림을 도맡고 아내를 돌보려고 보니 자신이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이런 저런 질문을 두서없이 남기니 아시는 분들은 정보를 남겨달라고 말이다.


그는 식기 세척기와 로봇 청소기의 필요성과 좋은 모델의 추천을 바랬고, 아내가 외출을 위해 번거롭게 속옷을 입고 벗고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도록 기능성 옷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건강식이면서 어렵지 않은 식사 메뉴의 자문도 구했던 것 같다.


100일간의 간병생활동안 그의 아내도 나의 엄마도 많이 회복되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평소 워낙 좋아하던 작가였기에, 한줄의 댓글이라도 정보를 남기고 싶었지만, 이미 많은 댓글이 작가에게 방대한 정보와 위안을 주고 있었다. 그와 동지의 마음으로, 나는 나대로 열심히 엄마를 간병하며 그의 아내가 쾌차되기를 함께 바랄 뿐이었다.


작년 봄에 내가 사는 지역의 강연회에 그 작가가 다녀간 뒤, 그의 글을 좀더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원래 크리스찬이었지만 신을 믿지 않은지 오래되었다고 했더랬다. 조금은, 사실 많이 아쉬웠다. 그렇게 좋은 세계관과 통찰력을 가진 그가 종교를 가진다면 삶이 훨씬 풍성하고 더 행복할텐데 말이다.


아내가 어느정도 회복된 뒤 그가 sns에 짧막한 글을 올렸다. 아내의 투병생활은 힘들었지만 그로 인해 다시금 종교를 가지게 되었고,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인생의 어려운 일들은 삶의 큰 그림에서 본다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삶의 힘든 일들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게다가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큰 그림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재조망하게 된다.


그가 다시 신을 찾게 되고, 자신만이 아닌 신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기쁘다. 그리고 그의 아내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 엄마와 더불어 회복되고 있음에, 삶이란 어쩌면 이렇게 희미하게도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