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세계로 발을 디디다. 1

자신이 살고 싶은 집 또는 세상 그리기

by 소소러브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려본게 얼마만이던가. 그것도 4B 연필을 잡고서 말이다. 초등교사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교대 3학년 여름방학때 던가, 잠시 미술학원을 다니며 아그리파만 주구장창 그리던 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그러니까 거의 20년만인 셈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특시 시에서나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훌륭한 강좌들이 많다. 늘 다니던 도서관에서 벗어나 수채화 기본반을 수강하기 위해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물론 며칠 전부터 준비한 A4사이즈 스케치북, 4B연필, 미술용 지우개, 30센티미터 자, 커터칼과 함께 말이다. (이젤 대신으로 사용할 독서대도 가지고 오랬는데 이건 깜빡했다. )


모임에 늦는 걸 싫어하지만 이건 참 마음처럼 쉽지 않다. 특히 초행길에는 말이다. 소방서 옆에 있는 건물인줄 알았는데 영화관 옆 건물이란다. 역시 돌다리도 두드려볼만 하다. 얼른 남편의 차를 돌려 수업 정시에야 겨우 강의실 빈자리 한켠에 앉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챙이 넓은 남색 모자를 쓰시고 누가봐도 예술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그 위해 망사로 된 긴 가디건을 걸치고 계셨다. '나는 예술인이다.' 라는 아우라를 온 몸으로 뿜어대면서 말이다. 그런 아우라가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그리곤 나에게서는 어떤 아우리가 뿜어져 나올지?! 짐짓 궁금해지기도 한다.


간단한 자기 소개 후에 <자신이 살고 싶은 집 또는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연필로 스케치 하라는 선생님의 주문?!이 떨어졌다. 각자의 실력을 테스트 삼아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껏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우리는지금부터 모두 7살 아이들이니 잘 그릴수도 없고, 잘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안에 있는 소망과 상상력을 그저 마음껏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참으로 상상력이 빈한한 나는 이럴 때 난감하다. 뭔가를 참고하거나 보고 그리는 건 애지간히 따라하겠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나에게는 특히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뭐든 일사천리로 빨리 하는 성격은 있어서 슥삭슥삭 그려본다. 까짓것 내가 살고 싶은 집인데 잘그리고 못그리고, 남이 어떻게 보고가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잠시나마 없는 베짱도부려본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근래에 교회 분들과 함께 다녀온 자연휴양림의 풍경만이 눈앞에 떠오른다. 산봉우리들이 우뚝우뚝하고 그 앞으로 계곡물이 흘러내려오는 광경을 연필 하나에 의지하여 선을 그려간다. 무려 20년 전에 보았던 호주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2층짜리 같은 1층집을 그려본다. (기둥이 높아서 2층의 효과를 내지만 1층은 텅텅 비어있어 습기에 강하고 때로 주차도 가능해 보였다.)


미래에 내가 살고 싶은 집 앞에는 텃밭도 그리고 저 멀리 장미 덩쿨도 잔뜩 그려본다. 병원을 오가는 길에 한 아파트 화단에서 자주 보던 풍경이다. 낡은 아파트와 너무나 대비되는 잘 가꾸어진 화단에 놀라 눈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한 아주머니는 자신이 이 다양한 종의 장미를 가꾸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더랬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보러 5년 전에 서울에서 내려와 정착하게 되었다는, 소일거리가 필요해 아파트 마당에 주민들의 허가를 받아 가꾸기 시작했다고. 각양 각색의 장미와 장미덩쿨은 지은지 3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를 화사하게 비쳐주곤 했더랬다. 그 장면은 나도 모르게 내 뇌리에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었나보다.


1시간 반동안의 시간동안 자기소개와 작품 하나,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간단히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가뿐하게 수업이 끝났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선생님은 나이에 걸맞게 말씀도 천천히 여유롭게 모든 걸 진행하셨다.


나 역시 조금은 교실에 붕붕 뜬 기분으로 가볍게 배워보련다. 내 안의 예술가를 조금씩 건드려 보며, 내안의 나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지며, 또 다른 나와 매주 한번씩 만나보려 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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