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술 수업 두번째 시간이다. 9시 30분부터 수업이 시작되지만 30분 일찍 도착했다. 미술 치료 상담사로 활동하시는 반원에게 내 그림도 좀 분석?!해 달라고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약속 시간 맞춰 도착하기이다. 이건 늘 너무 딱 맞게 도착하게 가려는 내 이상한 완벽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그냥 좀 일찍 도착하면 될 것을 그 남는 시간이 아까워서 집에서 이것 저것 할일을 하다보면 늘 약속시간에 딱 맞춰 빠듯하게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어쨌든 내가 부탁한 자리이기에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반원으로서 내가 일등이다. 기분이 좋다. 늘 일찍 출근하여 그 공간을 거닐고 바라보며, 그 공간만이 지니는 질감과 기분을 느껴보라던 노련한 선배 선생님들의 말씀이 기억난다.
'아, 이런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하는구나. '
하지만, 아마도 60대를 지나고 계신 것 같은 노련한 미술 선생님은 이미 도착해 계셨다. 오늘 물감과 파레트 등을 나눠주시기로 하셨기 때문에 일찍 오셔서 준비하고 계신듯 하였다. 나에게 좀 도와달라고 요청하셔서 나는 미술치료사 반원 분을 기다리며 파레트를 열어 부족한 파레트에 물감을 더는 일을 도와드렸다. 늘 교사로서 반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도와달라고 했는데 반원으로서 이런 일을 해보니 기분이 색달랐다.
수업이 시작되기 5분 전쯤이던가 약속했던 P반원이 오셨고 늦어서 죄송하다며 빈 종이에 '비를 맞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라고 하시곤 화장실을 가셨다. 곧 수업이 시작되어야하기도 했고, 뭐든지 빨리 해치워버리는 성격이라 시원스레 비줄기를 그리고 양 팔을 벌리고 비를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렸다. 그림 속의 나는 눈과 입은 웃고 있었다. P반원은 곧 돌아와서 내 그림을 보더니 말했다.
" 스트레스가 거의 없으시네요. 비는 스트레스고, 나의 표정은 내가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나타내요. 지금 아주 평안한 상태이시네요."
실제로 내 기분이 완벽히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간병도 끝났고 여름 방학이 끝나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이렇게 미술을 배우러 올 수 있는 내 상황은 감사한 상황임에는 분명했고, 실제 요즘 그렇게 느끼고 있는 바였다.
드디어 두번째 미술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연필로 8단계의 명암을 나타내기를 하였다. 8칸의 직사각형을 그려 진하게부터 연하게 까지 8단계의 명암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진하게부터 그리고 연한 마지막 단계는 비워두며 중간에 밝기 조절을 하는 식이었다. 파란색 물감으로도 8단계 명암 나타내기를 하였다. 물감으로는 연필로 보다 좀 더, 아니 초보자인 나에게는 훨씬 어려웠다.
물감이 마르는 동안 '구'도 함께 그려갔다. 명암의 8단계가 드러나도록 연필로 구를 그려보는 작업이었다. 소묘를 배운게 이미 20년도 넘은 일이다. 동그랗게 구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지만 종이를 굴려가며 열심히 그렸다.
수업이 마칠 10분을 남겨두고, 선생님은 자신의 작품을 칠판 앞에 가지고와서 세워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곤 어느 지적도 없이 그 작품의 좋은 점만 피드백을 하셨다. 그 점이 참 좋았다. 수업을 하다보면 자꾸 부족한 점을 지적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걸 듣는 학생도 하는 나도 서로가 마음이 힘들고 기분도 좋지 않다. 어떤 면이든 좋은 점을 발견해서 피드백을 주면 부족한 점은 이미 스스로가 알고 있을 것이기에 스스로 고쳐 나갈 힘도 생기지 싶었다. 역시 노련한 선생님은 다르구나 싶었다. 연륜이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지난학기에도 수강한 재수강생들은 사과를 그렸다. 선생님께서는 인터넷에서 사과 판매자의 농장의 사과 나무와 사과의 사진을 여러장 출력해 오셨다. 수업 자료가 있으니 어떤 설명보다 직관적으로 질감과 색채를 느끼고 반영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았다. 실물자료가 있으면 수업이 한결 수월해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에코백에 그림그리기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만들기를 좋아한다. 나도 내 생애 첫 에코백이 기대된다. 잘 배워서 '남 주는 '내가 되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