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알게 된 건 반년쯤 전이었다. 우연히 웹 서핑을 하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소소한 자신의 일상을 글로 풀어내거나 정보성 글을 일정 분량 속에 담아 내고 있었다. 블로그와는 또 다른 매력에 종종 브런치의 글들을 읽으며 요즘엔 기성 작가들 말고도 천지에 작가들이 널렸구나 하며 그들의 글솜씨에 감탄하곤 했다.
브런치에 내 경험과 생각을 글로 남겨보고 싶어 작년에 한 난소낭종 수술 이야기를 글로 써 보았더랬다. 하지만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꼭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도 아닌 것은 이 게으른 미래의 작가를 채찍질하지 못했다. 결국 반쯤 쓰다 만 그 글은 아직도 내 작가의 서랍 안에 들어가 있다.
30-40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이은경’이라는 세 글자 이름을 아마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녀의 유튜브 애청자라면 '9시의 요정'이라고 말하면 금새 알아 들을 것이다. 바쁜 아침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 놓고, 밀리고 급한 집안일을 조금 정리해두다 보면 9시의 요정과 만날 시간이 성큼 다가오곤 했다. 그녀와의 만남은 매일의 아침을 기다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운동 하셨나요?”‘
“독서 하셨나요?”
“칭찬 하셨나요?”
매번 하는 이 세가지 질문에 나도 모르게 어제의 나를 되돌아 보며 '그래 했지 했어, 아니 이건 못했네' 하며 스스로를 성찰하곤 했다.
선생님의 인스타를 통해 '슬기로운 초등생활 브런치 2기'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며칠을 고민했더랬다. 6주간의 코스이고 그리 저렴하지 않은 금액이기에 내가 중도포기하지 않을까 지레 겁이 났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유료 강의는 이전에도 들어보았기에 퀄리티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었다. 그저 내 의지에 대해 맹신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결국 마지막날까지 고민하던 나는 ‘에라이 모르겠다. 한번 질러보자’ 하는 마음으로 결제 버튼을 눌렀다. 돌아보니 내 작가 인생의 시작점이 되던 순간이었다.
N잡러의 시대를 넘어 핵개인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는 은퇴도 없는 시대가 되었단다. ‘직’보다는 ‘업’으로 먹고 사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직’이 있다. 이 ‘직’을 ‘업’으로 삼아 평생 해보자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과 변화는 너무나도 빨랐고, 누구나 선망하던 그 직업조차 내가 못해먹겠다 싶은 순간들이 꽤 자주 찾아왔다.
슬초 브런치 2기를 통해 나오는 매주 2개의 과제를 해 내면서,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읽는 삶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나는 내 자신이 좀 더 좋아졌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결혼 후 15년을 타인에게만 집중하는 삶이었다면, 그 지분의 일정 부분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떼어놓게 되었다. 내 책상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가만가만 내 생각과 느낌을 두드려 활자화 시키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참으로 소중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합격 통지서를 받고는 밤 9시 반이 넘은 늦은 시각에 남편이 굳이 파리바게트까지 가서 고구마 케잌을 사왔다.
“등단 축하합니다~~
등단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엄마의 등단 축하합니다~~~”
팔불출 짓이라면 죽어도 못하는 우리 남편이 생일 축하 노래에 가사를 바꾸어 친정엄마와 두 아이들 앞에서 가장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책읽고 책 사는 걸 너무 좋아해 집이 책으로 쌓이면서 나 때문에 책이 싫어진다던 ‘과거의 문학소년’은 어느새 나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아이도 엄마의 브런치 작가 합격 소식을 함께 기뻐해주었다. 친정 엄마의 기쁨이야 말해 뭐하랴. 엄마는 딸이 마흔을 넘어서 등단?!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하셨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아직 이르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은 그저 시작일 뿐이며, 이 안에서도 읽고 싶고 기다려지는 글을 쓰는 게 다음 나의 스텝이자 도전 과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 재촉하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을지도 모르는 글을 한 땀 한땀 옷을 짓듯이, 매일의 밥을 지어 내듯이 써 내려간다. 그 시간들이 쌓여 작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을 내가 되어 갈 것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