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소 Jul 19. 2020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달콤살벌한 당신의 고백

이토록 귀엽고 솔직하면서 애틋하고 음흉한 고백이 또 있을까. 이원하 시인의 산문집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을 읽으며 나는 자주 웃고, 또 가끔 민망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누군가를 향한 발칙한 마음. 그 마음이 너무 귀여워서.

이원하,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 달, 2020.


내게 글은 결핍에서 비롯된 산물이었다. 그래서 (생계유지가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쓸 때는 늘 마음 어딘가가 저리고 어려운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나의 시는 아픔에서 오고, 결핍에서 오고, 슬픔에서 오며 이 세 가지 감정은 전부 그에게서 받는다는 구절을 읽었을 때 뭔가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그녀의 말처럼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수많은 감정들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글을 쓰게 만든다.


모든 것이 시작된 제주

이원하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무작정 제주로 향했고, 그곳에서 살다 보니 한 사람만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을 엮어 첫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와 산문집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을 완성했다. 누군가를 향한 열렬하고 절대적인 마음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그녀를 사로잡은 그의 매력

하지만 시인이 사랑하는 ‘그’ 역시 결코 만만찮은 상대인 것 같았다. 거의 밀당의 고수급. 그렇기에 더 소유욕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자신이 그에게 끌려다닌 것이 아니라 쫓아다녔기 때문에 득본 일밖에 없으며, 그를 쫓아다니느라 그의 등에서 그의 부족한 면을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등에서 발견되는 면은 스스로 어쩌지 못하니 자신이 그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는 사랑 앞에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 같은 그는, 아름다움은 옮는 병이라고 여기는 시인의 마음을 사랑으로 물들인다. 때로는 투덜대고 때로는 질투하며 못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상상했던 제주의 삶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나약한 마음이 불어온다며 훌쩍이자 제주에서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그게 득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진심을 주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준다는 것

‘진심은 그에게 주고 진실은 내가 가지면 돼요.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진심을 그에게 주면 돼요.’라고 말하는 시인의 고백이 사랑스럽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그를 사랑하며 느끼는 무수한 감정들을 지켜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우리 역시 그녀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라고 응원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그 솔직함이 너무 당돌하여 무섭기도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한쪽 면만 존재하진 않으므로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혹은 누군가를 사랑했던 자신이 그리워진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시인이 쓴 산문답게 독특하면서도 공감 가는 글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어 어느 부분을 읽더라도 책을 덮은 뒤에는 슬며시 웃음 지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은 우리 모두 산뜻하고 애틋한 웃음을 지으며 잠들 수 있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