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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소 Jan 24. 2020

속좁은 여학생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일부를 준다는 것은

  

@ 오늘의 노래  <브로콜리 너마저-속좁은 여학생>


  앞으로 재도 중간, 뒤로 재도 중간                             

  학창 시절의 나는 말 그대로 ‘평범한’ 아이였다. 집안도, 외모도, 성적도 모두 앞으로 재도 중간, 뒤로 재도 중간인 아이. 조용하고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 있어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일은 언제나 부담스러웠고, 다수의 친구들과 몰려다니기보다는 몇몇 친구들과 교실 한 구석에서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었다.


  속 좁은 여학생

  그 무렵의 나는 겉으로는 친구들과 웃으며 어울렸지만 사실은 내 안의 어두운 면은 숨기며,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항상 밝고, 아무 일 없는 듯 보이기를 원했다. 내 안에 있는 어둠은 나만 아는 비밀이기를 바랐다. 그 은밀한 어둠이 멋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스스로 가두며,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 외롭고, 아프고, 가엽다고 생각했었다.


  때로는 나를 사랑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내 마음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내보인 적도 없었다. 타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그로 인해 찾아오는 고독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지내왔다. 이것이 일종의 자만이며, 나는 그저 속 좁은 여학생일 뿐이었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어쩌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나의 어두운 면을 누군가에게 내비쳤을 때, 나를 바라보게 될 상대방의 시선이.


  시간들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지금 이 시기를 보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누군가와 진정으로 함께 하고 싶다면 나를 보여주는 것을 주저하지 말기를. 나의 아주 작고 사소한 허물들, 나의 상처까지도.


  이것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는 여전히 가끔씩 내 안에 있는 여학생을 마주한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일부를 준다는 것은

  하지만 내가 어디까지 나를 오픈하든 내 곁에 머무를 사람은 머물러 있고, 떠나갈 사람은 떠나가기 마련이다. 결국 선택은 상대방의 몫이다.

  말이라는 것은 신기해서 누군가에게 전해지면 내가 갖는 무게는 가벼워진다.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그 사람의 존재가 조금씩 커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아프고, 상처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한다. 때로는 나의 진심을 외면하고, 나의 아픔을 무심하게 대하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일부를 나눠주는 것. 그리하여 내 안에서 타인의 자리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은 생각보다 멋진 일이다.


@ 커버 사진 출처 -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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