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딸을 둔 엄마의 뼈아픈 후회와 죄책감을 그린 책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를 읽었다. 이 책은 어느날부턴가 딸과 자신의 삶을 잠식해가는 '우울'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아 숨이 턱막히는 날들을 보내며, 그럼에도 조금씩 일상의 행복을 되찾고자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우울증은 앓는 당사자는 누구보다 외롭고 힘든데,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환자에게서 자꾸 멀어지고 싶은 이상한 병이다. P. 22
이틀에 한 번은 터진다. 아이는 눈물이 터지고 나는 속이 터진다. 급기야 나도 오늘은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다. 딸은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치달을 때는 두려움 때문인지 아무 말이나 막 한다. 그렇게 걸러지지 않은 말을 들을 때면 내 마음도 무섭게 요동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가만히 귀 기울여줘야 한다. 조언을 바라고 하는 말처럼 들리더라도 철저히 들어주는 역할만 해야 한다. P. 32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이 말은 진리이지만 위험한 말이다. 무심코 바라본 거울 속에서 허황된 욕심을 꿈꾸다가 숱한 좌절을 겪고 끝내는 심신이 허약해진 부모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아이를 만난다면 그것만큼 큰 형벌이 어디 있을까.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하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부모에게서 양육된 자녀는 마음속에 지옥을 건설하며 살아간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P. 42
나는 이제 불안과 싸우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두려움과도 친구가 되고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것이다. 나를 지배했던 불행한 과거와 화해하고 아이를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는 평범한 나를 인정할 것이다. 나는 내 딸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 P. 94
말을 멈추고 딸과의 관계를 재검토한다. 침묵의 강을 지나면 우리는 빛나는 언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말 해야 할 말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반짝인다.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수처럼. P. 99
별일 없는 삶이란 정성스럽게 식탁을 차려 밥을 먹는 것과 같다.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가장 먼저 부엌이 조용해지고 반대로 집안에 경사가 생기면 부엌이 가장 시끄러운 공간이 된다. P. 233
책을 읽으며 자신의 아픈 과거와 개인사에 대해 가감없이 얘기하는 작가의 용기에 놀랐고, 딸을 향한 애정과 삶에 대한 절박함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나라면 이렇게 솔직하게 나의 치부로 여겨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글을 쓰는 행위는 스스로를 포함해서 자신을 힘들게 했던 이들을 용서하고, 아픔으로 점철된 지난 시간들을 끌어안으며 치유해가는 과정이다.
작가는 우울증을 겪게된 딸을 돌보며 글을 쓰고, 서로에게 조금씩 솔직하게 다가감으로써 점차 평온한 일상을 되찾아간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행복은 어느 날 딸이 데려온 고양이가 주는 온기에서, 딸과 함께 떠난 제주의 고요한 숲길에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러가는 발걸음 등 소소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이들처럼 소소한 일상 속에서 상대방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간다면 더욱 반짝이는 언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빛나는 언어로 서로를 마주할 때, 우리는 우울과 동행하는 중에도 또 다른 손으로 행복을 놓치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